교회 구성원 중에 특별(?)한 자리가 하나 있다. 목회자 사모의 위치와 입장과 업무에 관한 생각이다. 목회자도 아니고(물론) 그렇다고 평신도로 자리매김하기도 좀 어색한 면이 있는 자리다. 어떤 교회는 통칭 ‘사모(님)’로 부르고, 어떤 교회는 완전 평신도로 분류해 아무개 집사 혹은 아무개 권사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위치가 애매한 만큼 역할 기대도 약간 모호하다. 평신도로 보자니 목회자 쪽에 있고, 목회자로 보자니 타이틀(전도사, 상담사)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제3지대에 있어서 앉을 수도, 설 수도 없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온 교인들에게 노출되다 보니 관심과 구설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너무 똑똑해도, 너무 조용(?)해도 관심거리다. 옷을 화려하게 입어도, 평범하게 입어도 말하려면 대화소재가 된다. 극히 예외적이지만 담임목사보다 사모의 영향력이 더 큰 비정상적 교회도 있다. 교회의 중요한 결정에 사모의 영향력이 필요 이상으로 작용하는 경우다. 역사적인 사모들이 있다. 칼뱅의 사모 이들레뜨 드 뷔르, 마틴 루터의 사모 카타리나, 대각성 운동의 가수 조나단 에드워드의 사모 사라 피에르 폴트 에드워드(1927.7. 17세에 결혼해 8명의 딸과 3명의 아들을 잘 길러냄)도 에피소드가 있는 사모들이다. 길선주 목사의 사모는 새벽마다 얼음으로 눈을 닦고 기도하다 실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1911년 아들 길진형이 105인 사건으로 구속돼 고문으로 죽는 고통을 겪었고, 1919년 길 목사가 민족대표 33인의 서명자로 2년간 옥고를 치를 때 가정과 교회와 자녀를 잘 돌보아 산정현교회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주기철 목사의 오정모 사모는 마산 문창교회 집사로 있던 교사였는데 주 목사가 상처하자 후임사모로 들어가 흔들리지 않고 목회하도록 내조해 주 목사가 신사참배 거부운동까지 감당케 도왔다. 손양원 목사의 사모 정양순은 애향원에서 나환자들을 돌보고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된 남편 손 목사의 뒷바라지에 헌신했다. 1942.10.14일자 옥중서신에 “이상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달마다 한 번도 어기지 않던 당신의 면회가 이렇게 늦는 걸 보니 아마도 집안에 무슨 변이 생긴 것 같습니다”란 구절이 있다. 두 아들(동신/동인)의 순교와 그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아들로 삼아 함께 살아야 했으며, 남편이 공산주의자에게 순교당하는 걸 겪어야 했던 그 사모의 심정과 형편이 어떠했을까 싶다. 믿음의 지도자들과 성공한 남자들 뒤에는 반드시 두 여인(어머니/아내)이 있었고, 목회도 예외가 아니다. 목회자 사모의 10계명을 소개한다. ①사모는 결코 좋지 않은 태도를 지녀서는 안된다. ②사모는 결코 아프지 않아야 한다.(심방 가야지 심방 받아선 안된다.) ③사모는 자신의 자녀나 교인들의 자녀나 똑같이 대해야 한다. ④사모는 언제나 목사(남편)가 섬기는 양떼의 요구들을 들어줄(경청)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⑤사모는 남편이 목회하는 교회가 잘 되도록 온 지식을 다해 좋은 친교자(a proper diplomat)가 되어야 한다. ⑥사모는 사전 주문이 없었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한 종류의 음식을 만들어 대접할 수 있어야 한다. ⑦사모는 어떤 사전통보가 없었더라도 교회에서 어떤 악기를 대신할 수 있는 찬양자이어야 한다. ⑧사모는 2달러 예산으로 15명을 먹일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어야 한다. ⑨사모는 사전예약이 없어도 주일학교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⑩사모는 어떤 상황에서도 교회 안에서 불평자가 되어선 안 된다. 요즘 상황과 기준으로 볼 때 너무 심하고 가혹한 듯싶다. 그러나 사모는 목회자와 동사 목회를 해야 한다.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은 극히 예외적이다. 구세군은 특히 사관과 사모가 함께 제복을 입고 사목활동을 한다. 앞으로는 목회사례비를 연봉제로 지급해 가정관리와 일반살림을 독자적으로 해봄으로써 일반 교인들의 생활애로를 공감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떤 교회는 목회자 청빙 절차를 진행하다가 목사님 사모가 너무 예쁘다는 이유로 불합격 판정을 내린 경우가 있다. 목사 사모는 너무 예뻐도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