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유해근 목사를 통한 몽골 선교와 민간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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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초의 국제 몽골학교 세우다

유해근 목사가 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초가 되기를 기도하며 매사를 추진하여온 개척 사례들을 보며 하나님 나라와 대한민국을 향한 충성과 그 결실들이 너무 귀하게 여겨진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국가 간 민간외교의 성공적 결과까지도 창출해내는 등 여러 가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기에 그동안 필자가 본 유해근 목사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응답받은 한몽간 민간외교의 성공사례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성경에서 보는 복음 전파의 과정을 보면 예수님이 오신 후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히브리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셨고 다음 단계는 바울을 마케도니아로 건너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으며 마지막으로 로마의 셋방에서 2년간을 외부 방해 없이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이로써 사도행전 기록은 28장에서 진행형으로 중단되어 언제 어떻게 29장부터 기록이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의견들이 돌출되어 왔다.

필자는 그 이어질 29장부터는 이미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이후, 특히 일본 식민지 시대와 6.25를 겪으면서 적그리스도에 의해 엄청난 순교의 피를 흘린 이 민족을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세계복음화를 위하여 사용하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부르시는 소명과 사명을 깨닫고, 세계 방방곡곡에 파송되어 순교를 각오한 선교사가 3만 5천여 명에 이르렀고 거기에 발맞추어 우리 교포 750만여 명이 선교현장에서 선교의 촉매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0만이 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목사 또는 기독교인으로 개종해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선교 역(逆) 파송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3만 5천여 명의 탈북민과 복음통일 이후 2천 500만 북한 우리 형제들이 선교 역군으로 등장할 예비 사역자들을 하나님은 이미 예비해 두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복음화의 꿈을 품고 일익을 감당하고 있는 유해근 목사는 군목에서 제대하여 당시로서는 근무 여건이 열악한 공단지역의 근로자들을 위한 선교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눈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으나 그때 상황이 도저히 선교현장을 벗어날 수도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외국인들이 밀려오는 시기여서 생각지도 못했던 난제들과 극심한 경제난까지 겹쳐 적기에 눈병을 치료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지금은 완전히 실명한지 벌써 15년이 되었다.

그러나 유 목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특히 당시 몽골 근로자를 위한 선교 사역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유 목사를 통하여 얻은 선교결실이 여러 방면에서 나타났고, 부수적으로 민간외교의 결실도 뒤따랐다. 그 실례를 든다면 몽골인들은 유목민족이어서 온 가족이 함께하는 것이 그들의 생활 방식이다. 한국에 취업차 입국할 때도 자녀들도 같이 입국하기 때문에 자녀교육이 제일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난제를 안고도 유 목사는 무작정 한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 자녀들을 모아 교육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강변역 인근의 작은 지하실에서 8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학교는 현재 광나루역 인근의 대지 3천93(약 900평) 평방미터에 연 건평 2천940 평방미터(890평) 규모에 학생 330여 명을 수용하는 학교로 발전하였고 지방에 살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도 별도로 운영하게 되었다.

이 학교는 몽골과 한국에서 외국인 학교로 인가를 받음으로 몽골이 세계에 최초로 세운 외국 유일한 학교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 인재를 키우는 학교로 인정받아 몽골 정부가 대단히 소중히 여겨지는 학교가 되었고 따라서 대통령과 총리, 울란바타르 시장, 국회의원 등 몽골인사들이 한국에 오면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여기에 유 목사는 한몽간에 (사)몽골울란바타르 문화진흥원 초대원장도 겸하고 있어서 몽골의 고위직들과의 교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가고 있다.

이와같이 유 목사는 자신이 꿈꾸면 하나님께서 그것이 현실이 되게 하심으로 무일푼에서 수 십억 원의 몽골학교를 서울시내에 설립하게 하셨다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거기에 유 목사는 또 다른 한국과 베트남의 먼 미래를 내다보며 한베(베트남) 학교를 개강함으로 더 큰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2. 성공적인 민간외교로 공산국가에 세워진 몽골 초대교회

하나님께서 유 목사를 통해 이루신 선교의 결실을 또 한 가지 보고자 한다. 아직 몽골이 러시아 공산주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단절되었던 한몽간에 교류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공산국가에서 제일 싫어하는 교회의 부지를 유 목사의 기도와 민간 외교력을 총동원해서 몽골 정부로부터 울란바타르 중심요지에 무상으로 공여받아 교회를 건축하여 몽골 최초의 교회가 설립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일로 인해 공산권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교회를 인정받는 결과가 되었고 차후 많은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 확장에 선례가 되어 오늘의 선교사 수백 명 파송의 길이 열렸다. 그 결과는 놀랍게도 이슬람 종교가 한국으로 몰려오지 못하도록 하는 방파제 역할도 하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몽골은 우리 국토의 약 16배나 되는 광활한 국토에 인구는 현재 330만여 명이 흩어져 사는 유목 민족이어서 정보교환도 어렵고 인구의 절반이 수도 울란바타르에 살고 있으므로 실제로 몽골은 울란바타르 시민이 좌지우지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수도에 사는 시민 중에서도 경제력이 가능한 사람들 순으로 한국으로 와서 많은 돈을 벌어 수년 후 귀국하면 그곳에서는 큰 부자가 되니까 너도나도 한국으로 오기 시작하였고 지금까지 수십 년 지나면서 울란바타르에 사는 성인들은 대부분 한국을 다녀갔거나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초창기에 몽골인들이 낯선 한국에 갈 때는 유 목사의 안내를 받으라는 신문의 광고가 실릴 정도로 소문이 나 있어서 유 목사의 사역의 넓이는 더욱 넓어졌다.

그러는 사이 우리나라에서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생활에 익숙해져 돌아간 몽골인들에 의해 조성된 몽골의 수도 울라바타르는 아파트 건축 모양이나 거리 풍경과 마켓 디자인 상품까지도 한국과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친한파가 된 몽골인과 한국인 간에는 민간외교가 정부 외교보다 앞서 나가는 결과가 되었다. 민간인들끼리 상호신뢰하고 상통하며 법에 문제없이 매사 해결되면, 상호 권위와 체면과 명분을 따져야 하는 국가가 개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유 목사의 저서 「아이 러브 몽골」에서 민간외교의 중요성을 실감있게 묘사한 내용에서 한몽간의 미래를 바라볼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츠키는 엄마를 따라 한국에 온 아이다. 엄마는 우리 학교 수학 선생님인데 우리 선생님들 중 한국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다. 어츠키는 어머니를 닮아 아주 영특한 아이인데 대통령이 꿈인 그 아이가 “몽골에 목사님이 오시면 내가 대통령 차 갖고 공항에 갈 거예요. 그리고 대 통령 궁에서 맛있는 것 대접하고 대통령궁에서 목사님과 같이 잘 거예요. 그리고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다 할 거예요”』

이것은 단지 외국 어린 학생이 몽골학교 이사장인 유 목사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국내의 다양한 이주민들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3. 대한민국, G2 넘어 세계의 리더로

식민지 생활과 전쟁으로 인해 세계에서 최빈곤국이었던 우리나라가 복음 위에 대한민국으로 건국된 이후 불과 70여년 만에 세계 경제 10대국으로 성장한 것처럼, 미국이나 중국 등 주위 환경에 얽매이지 말고 이를 초월하여 복음 들고 세계를 향해 전진함으로 사도행전 29장을 써 내려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경제적으로도 G2가 아니라 세계 톱에 올라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룬 세계 복음화의 선봉 대한민국에게 주는 하나님 은총의 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며,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라 했다. 이것이 나섬과 몽골학교의 고백이다.

“나는 마틴루터 킹 목사보다 더 큰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산다!”

유해근 목사는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시는 실상을 바라보며 솔로몬이 일천 번 제물을 드리는 하나님 사랑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 같이 주님께서 주신 새 계명을 따라 자신의 생애와 모든 것으로 헌신하며 미래의 세계를 내다보고 있다.

4. 몽골 통한 복음 통일의 길

마지막으로 유 목사 특유의 ‘복음 통일관’에 대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누구도 분단 70여 년이 되어 가도록 복음 통일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해 이산가족의 마음에 한으로 남아 있는데 유 목사의 복음 통일 방안은 현실적으로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어 복음 통일의 서광이 밝아 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공산주의 국가와 자유 민주주의 국가는 이념이 극과 극의 차이가 있어서 상호 협상이 매우 어렵다. 그러나 유 목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몽골 근로자들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몽골의 고위층 인사들과도 연결되어 난제들이 해결되는 민간외교의 성공적 사례들을 보면서 복음 통일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그의 저서 「아이 러브 몽골」를 인용 소개하고자 한다.

『울란바타르 시장이 2015년 5월 2일 우리 몽골학교를 방문하였다. 이전 시장들과는 몽골을 오고 가면서 친분을 쌓아 친하게 지내기도 하였다. 그중 내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시장은 엥 흐볼트 시장이며 그 다음은 빌 릭트 시장이다. 그 후 엥 흐볼트 시장은 국무총리가 되었고 빌 릭트 시장은 엥 흐바야르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되었다.

<중략> 그런데 이번에 온다는 시장은 친북파이고 기독교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에 기독교 정신으로 교육하는 우리 학교 운영에 반응이 나쁠 것으로 생각해서 매우 긴장되었다. <중략>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몽골 학생들을 앞세워 그를 환영하는 환영사에서 “바트홀 시장님, 나는 지금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다시피 당신들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지금까지 운영해 오면서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후회한 적이 없습니 다. 나는 오히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여전히 당신들의 아이들을 위하여 몽골학교를 세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몽골을 사랑하고 몽골의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나하고 친구가 될 생각은 없습니까?”라고 환영사를 하자 바트홀 시장은 답사에서 “나는 당신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사랑하니 참 감사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나에게 말해 주십시오. 나는 당신을 돕고 싶습니다”라는 위로의 답사를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 복음 통일의 열쇠라고 할 수 있는 몽골의 대법관 겸 인권위원장과 유 목사의 대화 중 일부를 들어보도록 하자.

『“당신은 지금 몽골사람들의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들어오셨지요?”

“우리는 지금 이 좁은 땅에서도 3만 명이 넘는 몽골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돕고 있습니다. 몽골 근로자들뿐만 아니라 몽골 아이들을 위해 학교까지 세워 보살피고 있습니다. 몽골정부가 지원해주어서 만든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나 또한 부탁이 있습니다. 현재 몽골에 들어가는 북한 이탈주민들의 인권과 생존권에 도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나의 이 말에 몽골 인권위원장의 얼굴이 바뀌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몽골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관심만큼 몽골에 들어가는 탈북민들을 도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제안은 확실히 몽골을 움직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일면 그동안 몽골학교에서 믿음으로 자란 아이들이 오랜 시간 지나면서 몽골에 돌아간 이 아이들의 약 20년 후를 바라보면 대통령을 비롯해 사업가 학자 변호사 의사 목사 등 몽골의 지도자들로 우뚝 설 것이다. 그러므로 확실한 선교 전략은 학교를 세워 교육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몽골에는 6.25 때 북한 전쟁고아를 수용했던 곳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하는데 이런 시설을 활용해서 탈북자들이나 현재 몽골에 거주하는 북한 공무원, 북한 노동자들의 탈출을 도와 완충 지대로 활용하여 현지에서 적응하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면 나중에 통일의 역군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북한인들의 잠들었던 영혼을 깨워 그들 스스로 자유와 인권의 눈을 뜨면 탈북 선례를 보고 세계에 나가 있는 북한의 많은 근로자 외교관과 엘리트 그룹인 유학생들의 탈출 도미노가 일어나 마치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온 약 8%의 동독인에 의해 동독이 무너졌듯이 결국 김정은 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복음 통일의 날이 밝아오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NGO들을 통해 UN에 김정은의 혹독한 독재로 북한인들의 빼앗긴 자유와 인권사례들을 고발하는 한편 외부와 단절된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 세계의 참모습을 여러 채널을 통해서 적극 홍보하고, 정부 또한 과거 정부의 통일부는 북한을 돕기 위한 통일부라는 오명을 벗고 적극 자유 통일을 위해 노력할 때 복음 통일의 날이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김현용 장로
● 신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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