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위의 말씀처럼 동곡 김건철 장로님은 세상의 잘못된 관습이나 개인의 모든 욕심을 벗어버리고 평생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려고 늘 노력하셨다. 또한 이 나라와 민족, 고향을 위해 기도하신 분이셨다.
하나님의 참된 진리 안에 사셨던 김건철 장로님! 우리는 한 분의 위대한 거목 신앙인을 1년 전 하나님 품에 안겨 드렸다. 김 장로님의 이 땅에서의 삶은 모든 이들의 마음에 가깝고도 늘 따뜻한 분이셨다. 한국 교계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큰 어른이 1년 전 우리 곁을 떠나 하나님 품 안에 잠들었다. 그런 장로님이 남기고 가신 엄청난 빈 자리 앞에서 그 분을 보낸 우리들의 마음은 깊은 허전함과 그리움에 잠기지만 그는 평생을 교계에 큰 족적을 남기시고 언제나 말과 행동에 본이 되셨다. 별세하기 수년 전부터 몸이 불편하신 와중에도 주님께 찬송하고 예배하기를 좋아하셨던 김 장로님의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온 힘을 다한 이 충실한 장로님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주님께 우리는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린다. 오랜 세월을 두고 저마다 생각과 주장이 다른 오늘의 세상 속에서 많은 사람들, 특히 목사, 장로들이 가장 존경하는 한국 교계의 원로이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 힘의 원천은 다름 아니라 인간을 위해 스스로 더없이 비우고 낮추신 주님의 은혜로운 복음이었음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확신하고 있다. 1950년 아버지 김능백 목사님과 단둘이 월남하셨다. 김 목사님은 예산읍교회를 크게 부흥시켰고 김 장로님은 부산국제 시장에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면서도 동산유지창업 발기인으로 시작하여 가정주택(주) 과천농원을 세워 기업인으로서도 크게 발판을 마련했다. 그후 전국남선교회와 전국장로회 회장을 지내고 남선교회 70주년 기념교회 실로암안과병원 건축에 엄청나게 기여하는 등 수많은 공을 세웠으며, 재한 몽골학교에 헌신한 공로로 몽골대통령이 직접 내한, 북극성 훈장을 수여했으며 교육학 명예박사도 취득했다.
특히 고향 피난민단체인 평양도민회에 혁혁한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평남도민회 축구팀과 장학회에 거액의 기금을 출연하는 등 두 기관에도 크게 헌신해 훈장을 받기도 했다. 필자는 1983년 서울노회 남선교회 활동 중 김건철 장로를 처음 만났다. 평생을 동생처럼 동지처럼 친구처럼 40여 년을 지내왔다. 특히 장로신문에 이사장, 발행인, 사장, 명예사장 등을 지내는 동안 본보 발전에 큰 공헌과 족적을 남긴 분이다. 장로신문 12면 발행을 20면으로 발전시킨 그의 공로는 대단한 것이었다. 특유의 애처가로 돌아가실 때까지도 부부가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말년을 행복하게 보냈다. 슬하의 3남 1녀를 크게 성공시켰고, 사위가 근무하는 세브란스병원에 거금을 헌금하기도 했다. 고향인 평남 강서군 누차면 고창리에 교회수축이 꿈이었던 그는 가끔 고향 얘기와 두고온 동생들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셨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호탕한 웃음과 함께 겸손, 그리고 섬기고 나누고 베풀었던 그의 인생을 우리도 본받아 살아 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