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자’ (롬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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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장로, 전국장로회연합회 수석부회장
전국장로회연합회 52회기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자’라는 주제를 정하게 된 것은 전국 3만 4천여 장로회원들이 자신들의 신앙의 자리를 성찰하며 무언가 온전하게 하나님 말씀에 바르게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고백하는 마음과 더불어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염려하는 상황을 돌아보며 장로로서 더 깊은 신앙적 성찰을 통해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로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신앙은 방향이다. 그래서 우리가 향할 방향은 하나님이고 그분의 말씀이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회개로부터 출발한다. 회개는 지금 자신이 처한 신앙적 위치와 방향을 점검하고 더 순결하고 올바른 방향인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의 삶이 하나님과 함께함이어야 한다.
52회기 주제 목표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주제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이전보다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시키거나 성경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는 분명 아니라고 생각된다. 말씀으로 돌아가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말씀으로 돌아가면 우리가 처한 상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시각이 변한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파는 ‘평신도 경건운동’으로 태어난 파다. 그들은 말씀을 제대로 지켜야만 자신들이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말씀 그것도 문자 그대로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제사장이 지켜야 할 정결 규례까지 철저하게 지키며 그것으로 인해 예수님의 제자들과 항상 갈등과 긴장 관계를 만들었다. 가장 비근한 예로 음식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격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말씀을 잘 지킨 자
말씀을 잘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오랜 신앙적 인식이 되어왔다. 마태복음 19장 16부터 21절까지 보면 한 부자 청년이 예수께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계명을 지키라는 예수의 말씀에 청년은 어려서부터 이 모든 것을 다 지켰는데 무엇이 부족한지를 묻는다. 이에 예수께서는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니 그는 근심하며 돌아갔다.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인 계명을 잘 지켜왔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확신한 청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 청년은 영생의 문제에서 부족한 한 가지를 해결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다.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 많은데 그것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가 지향하는 바는 참 영생이 아닌 세상이었다. 그래서 예수를 따라 영생의 길로 들어서지 못한다. 이 청년은 과연 계명을 잘 지킨 것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그 말씀을 다 지키며 살았지만 온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문자에 갇힌 지킴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나타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인가? 사랑이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잘 지키셨다. 그런데 그 말씀 지킴에 있어서 말씀을 철저히 지킨다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켰다. 특히 정결법에 있어서 종종 걸렸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어 논쟁이 되고 세리나 창기와 같은 죄인들과 한자리에서 밥상 공동체를 만들었고, 이방인들의 병을 고쳐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셨다. 이렇게 바리새파의 전통에 따라 무시되어야 하는 이방인들과 친밀하게 대하는 것을 그들은 율법적 전통을 어긴 것이라고 지적하며 끊임없이 논쟁을 걸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잘 가르치고 잘 지킨다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제사장 그룹들에 의해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말씀을 어겼다는 꼬투리를 잡아 십자가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킨 자가 누구인가? 예수인가 바리새인인가? 예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말씀 하셨다.(마 5:17) 예수의 삶에는 늘 하나님의 마음이 묻어나고, 드러난다. 바로 사랑이다. 부자청년은 율법을 잘 지켰지만 하나님의 마음이 묻어나지 않았다. 즉 사랑의 기초가 없었다는 것이다. 사랑의 기초가 없는 성령의 은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바울은 주장한다.(고전 13장)
말씀,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자는 것이다. 지식보다 사랑인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자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식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거가 아니라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여야 한다. 특히 법이나 제도적 지식은 공동체의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지만 그 법적 지식이 사랑을 기초로 할 때 어느 공동체든 사랑의 덕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법으로 승리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억울한 십자가형을 받고도 법으로 따지지 않았다. 예수는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고 우리에게 그 마음을 알려 주시려고 한 자기 비움의 길을 달게 가신 것이다. 그 마음이 사랑이다. 그 사랑이 그리스도인인 나를 살게 하신다. 그러니 나도 그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13장 8절에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10절에는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했다.
말씀 따라 살아가는 삶의 모습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말이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마음, 사랑이 있으며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나타나게 하자는 뜻으로 결단하는 굳은 의지라고 생각된다. 한국교회가 많은 은혜를 입고 사랑의 많은 빚을 진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지키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고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