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잡지나 책을 발행하다 보면 교정을 잘 봐도 오자가 발생된다. 1950년대 동아일보 가두판 신문기사에 한자제목에 “李承晩 犬統領”이라는 기사제목이 실렸다. 大자로 써야할 한자를 개견자(犬)로 표기되어 이승만 대통령을 크게 모독하게 된 것이다. 재빨리 신문제작을 중단하고 신문회수에 박차를 가하는 노력을 보였다. 정부는 경고 이상의 징계를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 동아일보는 1955년 3월 15일에는 미국과 한국의 석유협정 기사 제목을 문선공의 오식으로 <고위층 재가 대기중 한미석유협정 초안> 이렇게 나가야 할 기사 제목이<괴뢰고위층 재가 대기중>으로 표기된 채 9000부가 이미 인쇄되고 가두판 군부대 등에 이미 375부가 독자에게 넘어 갔다. 급히 75부 회수하고 300부는 회수 못한 채 이승만 대통령은 괴뢰라는 오명을 받게 된 것이다. 이승만 정부는 동아일보에 무기정간처분을 내렸다. 당시 야당신문으로 정부에 불쾌감을 준 것이다
그러나 그해 4월 16일에 복간되고 구속 되었던 정리부장 문선공, 식자공이 다 석방되고 책임지고 사직했던 주필겸 편집국장도 복직되어 ‘괴뢰’ 낱말 오식사건은 일단락된 것이다. 동아일보 일간지 기사에 글자 하나 낱말 하나가 오식으로 빚은 큰 사건을 우리는 경종으로 삼고 한글자 한낱말 사용에 누구나 지극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나의 경우 1960년대 어느 주간 기독교신문에 고교생과의 미담 기사를 쓰고 나와 학생을 발표한 사진 밑에 학생 이름을 바로 쓰고 내 이름은 강동춘 담임선생님으로 표기하여 나의 성을 오씨에서 강씨로 바꾸어 놓았다.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신문사에 항의하지 않고 그저 신문사 실수로 여기고 넘어갔다. 성을 바꾼 글한자의 파문은 큰 것이다.
나의 1950년대 고교 친구가 어느 모임에서 한 말이다. 자기 집에서 자기 아내와 자기집 세든 남자 아내가 배달된 편지 한통을 놓고 서로 자기네 편지라고 승강이를 벌였다고 한다. 세든 남자는 당시 인기 대중잡지 편집장으로 광고 지면이 조금 비길래 거기 행여나 하고 ‘누이동생구함’이란 한줄 짧은 광고를 낸 것이다. 수천통 편지를 받았는데 한통의 편지는 김기주방이라 쓰지 않고 집주인 김기주 옆에 나란히 아무개 편집장 이름을 썼기 때문에 두 여자가 다투었으나 편집장 아내가 남편의 ‘누이동생 구함’ 이야기를 하여 서로 자기 남편 편지라는 싸움은 쉽게 풀렸다고 했다. 그 편집장은 그 많은 편지 중에 한동네 사는 예쁘장한 누이동생 하나 구하여 기쁘게 지내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잡지 광고 글 한줄도 엄청난 대중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글문학회를 창립하고 문학을 통하여 한글운동에 열중하던 안장현 시인이 상처를 하고 후처를 맞이하기 위해 30대 40대 여성 중에 아내감을 구하는 수필 ‘가물(家物)을 구함’을 월간중앙에 발표한 일이 있다고 했다. 그 수필의 영향력은 커서 전국 각지에서 편지가 오고 심지어 미국에서도 구혼 편지가 날아 왔다고 했다. 당시 자신이 50대이므로 전처 자식도 고려하여 40대 여성 편지 10통 정도를 골라 친구들에게도 읽게 하고 선택에 자문을 구했다고 했다. 그리하여 대구 어느 유치원 원장 편지를 후처감으로 연락하고 만나서 아내를 삼았다고 한다. 동생들 교육 뒤바라지 때문에 혼기를 놓친 훌륭한 여성이었다고 내게 말한바가 있다. 이 일은 한편의 수필이 준 영향이 엄청나게 큰 예가 아닐 수 없다. 글자 낱말 글월의 위력은 엄청나다. 우리 조심해서 좋은 글을 써야 하겠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