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6:12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싸움이 시작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정자끼리 치열하게 싸운 끝에 가장 강한 정자가 난자를 만나 수정되어 아기가 만들어지고 세상에 태어난다. 그때부터 세상에서의 싸움은 끊이지 않는다. 아기가 태어나면 울음으로써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알린다. 그때부터 살기 위해 엄마의 젖을 빨고 자라면서, 전염병이 유행할 때 걸리지 않기 위해 약을 먹고 싸워야 하고, 감기가 찾아와도 바이러스와 싸워야 한다. 초등 학교 6년 동안 친구들과 열심히 공부해야 졸업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부단히 선의의 싸움을 해야 한다. 졸업하면 취업을 위해 애쓰고 수고하며, 무사히 취업한 후에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야 인정 받고 승진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삶의 현장에서 생존을 위한 전쟁이다. 이 싸움에 대해서 신랄하고도 정확하게 제시한 사람이 있다.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다. 그는 “현재 오늘 내가 존재하는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고, 내일의 문제는 오늘을 싸워서 이기는 것이며, 모든 날의 문제는 죽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앞서 필자가 말한 것같이 사람이 산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인생은 싸우지 않고는 존재할 수가 없다.
싸운다는 것은 어렵고 힘들고 괴롭고 불안한 것이다.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므로 싸워야 하는 운명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빅토르 위고의 세 가지 싸움에서 한 가지를 더해서 인생은 네 가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사계절, 자연과 끝없이 싸워야 한다.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와 싸워야 하고, 여름에는 찌는 듯한 더위와 싸워야 하고, 봄과 가을에는 바뀌는 계절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사실 사계절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면도 많다. 봄에는 겨울 추위가 남아 있어 서 아침과 저녁으로는 춥지만, 낮에는 따뜻한 봄의 태양과 함께 만물을 보 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신비를 느낄 수 있다. 가을은 들판에 심긴 오곡백과의 아름다움과 함께 인생의 깊은 사색과 의미를 주는 계절이기도 하다. 인생은 좋고 나쁜 것에서 잘 적응할 때 행복을 느끼고 승리의 기쁨도 느낀다.
둘째로, 더 무서운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싸움이다. 대표적인 것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싸움이다. 이 싸움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이 무수 히 죽어갔다. 6·25전쟁으로 아까운 생명이 육신의 생명을 잃고 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베트남전쟁에서도 장기간의 공방으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죽었고, 걸프 전쟁에서도 선량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 무서운 전쟁은 현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약성서에도 아말렉과 이스라엘의 전쟁, 다윗과 골리앗과의 싸움, 여호수아와 가나안 일곱 왕의 싸울 등이 나온다. 인류의 역사는 싸움의 역사다. 그래서 지구상에서의 인간의 삶이란 먹고 살고 생존하기 위해 물질을 차지하기 위해, 자유와 평안을 누리기 위해 싸워야 하는 존재이다. 이 싸움에서 지면 패배자로 전락한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서 끊임있이 싸우며 승리에 도전하는 것이다.
셋째로 나 자신과 싸워야 한다. 나는 게으른가 아니면 부지런한가, 자신에게 물어 보라. 아침 9시가 지나도록 그런 사람은 생존하기 어렵다. 그러나 부지런한 새 같은 새벽형 인간도 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다. 사도 바울도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였다.
우리 시대는 사회 부조리가 만연하다. 수고하지 않고 많이 얻기를 바라는 시대다. 국민으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해서 국민을 일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우리 국민을 향해 “일하여라, 일하여라, 좀 더 일하여라”라고 강조했다. 나는 이 사상에 매력을 느낀다. 부지런한 새처럼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인생의 싸움에서 이기게 된다.
마지막 싸움은 내 속에 있는 죄와의 싸움이다. 선한 나인가. 악한 나인가? 어떻게 하면 선한 내가 될 수 있을까? 선한 내가 되려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2)라는 말씀처럼, 믿음 안에서 십자가를 바라보고 끊임없이 기도할 때 선한 내가 될 수 있다. 그 결과 영생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죽음 후의 영생이다. 복음의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하였다. 죽는다는 말은 거짓된 나. 잘못된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내 속에 선한 마음과 선한 생각을 채우기 위해서 싸운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악한 나와 선한 내가 싸우기 위해 ‘누가 나를 이 사망에서 건져 낼까? 건져 낼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라고 고백하였다. 바울은 이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쳤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6-8)라고 하였다. 그는 승리하여 면류관과 함께 구원의 영생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은 믿음 안에서 선을 위하여, 의를 위하여, 선한 삶을 위하여 자신감 있게 당당하게 싸워서 이겨야 한다. 인생의 싸움의 목적은 행복과 보람과 평안과 영원한 삶이므로, 싸워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