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고교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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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자넨 별로 좋은 말은 못 듣겠구먼. 권사님께.”

“맨날 이거지 이거야.”

말을 하면서 덕배에게 주먹으로 매 맞는 시늉을 해 보였다.

“여봐! 이왕 신자생활을 할 바에는 잘해야 되는 게 아닌가?”

 덕배 말에 대답 대신 암소처럼 히죽히죽 웃어 보였다.

덕배는 동기의 손을 꽉 잡았다. 이 사람들이 지난날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다니…

몇 학년 때였던가. 어느 날 국어시간에 ‘청춘의 피가 끓는다’는 대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날따라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조는 애가 있었다. 국어선생님이 그냥 있을 리가 없었다. 자는 애에게 가서 툭 치면서 ‘청춘의 피가 끓는다고 했는데 몇 도냐?’하고 물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큰소리로 대답을 했다.

“100도입니다!”

“100도?”

“네! 물은 100도라야 끓습니다.”

“일어서! 임마!”

선생님이 화를 냈지만 모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선생님도 참다못해 웃음을 터뜨렸었다.

지금 바로 그 동기들이 쭈구렁 백발이 되어 자리를 같이 한 것이다. 이제 와서 새삼 위신이니 체면이니를 따질 게 없는 사람들이다. 그저 생긴 대로, 내키는 대로, 부담 없이 웃고 떠들어대며 손뼉을 치는 것이다. 사실 속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억지웃음을 지어가면서 그런 체를 해야만 하는 어정쩡한 자리보다는 얼마나 순수하고 부담없는 홀가분한 자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자! 내 말 좀 들어 보라구!”

동기회 부회장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덕배 동기가 지난번 신문에다가 투고를 했던 게 하도 내 마음에 공감을 주었기 때문에 한번 들어 보았으면 해서 말인데…”

“그럼 직접 덕배가 말하면 되겠군.”

“그래 그래! 그게 좋겠다.”

다시금 장내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덕배는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회의원의 연설 같은 시국에 관한 이야기가 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새마을 운동이 정치적인 희생물로 될 수는 없다는 내용이었는데 하여간 그것은 그렇고 오늘 이렇게 오래간만에 자리를 함께 하고 보니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 있어 마음이 울적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천 년 만 년 살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사는 날까지는 건강하게 살면서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몸을 유지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 모두 보람되게 살아갑시다. 감사합니다.”

많은 무종교의 동기 앞에서 그 이상의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거나하게 술에 취했는데도 교가를 부르자는 동기회장의 제의로 모두는 엄숙하게 일어서서 음정이나 박자는 무시하고 소리높이 불렀다.

4월이라지만 아직도 밤공기는 차가웠다. 덕배는 마음이 후련하도록 상쾌했다. 그리고는 새삼스럽게 동기들이 소중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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