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정신으로 양육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
기독교 교육 향한 열망, 이사회가 뒷받침할 것
새문안교회 서원석 장로는 지난 12월 28일 학교법인 경신학원의 제6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경신학원에서 지난 8년간 서울노회 파송이사로, 지난 1년간 부이사장으로 봉사해온 서원석 장로는 경신학교 제1회 졸업생이자 제2대 운영이사회 이사장인 서병호 장로의 손자다.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의 사택에서 ‘언더우드학당’으로 시작한 경신학원은 1890년 ‘예수교학당’, 1893년 ‘민노아학당’, 1901년 ‘연동중학교’를 거쳐 1902년 ‘예수교중학교’로 개명, 1905년 경신학교로 개명하고 제1회 졸업생 서병호 장로를 배출했다. 일제의 신사참배, 국민징용, 창씨개명 등 강압정치가 잇달아 연지동에 위치했던 학교의 재산을 조선총독부 체신국에 넘기고 정릉으로 이전, 대지 2만 평에 600평의 교사 3개 동과 부속건물을 건축했다. 애국지사 김홍량과 김원량의 지원으로 교사 건축과 더불어 위기에 빠진 학교를 정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1914년 망명하여 중국에서 활동했던 서병호 장로는 1947년 귀국해 경신학교 재건에 힘썼다. 경신학교에서 교사와 학감(지금의 교감)으로 열의를 보였던 서병호 장로는 1951년 6.25전쟁으로 학업이 어려웠던 시기에도 부산 남부민동 천마산에서 대광학교와 합동수업을 하고, 1952년 서울수복 후 승동교회에서 경신·대광·정신 연합훈육소를 개소, 6월에는 피어선기념 성경학원으로 이전하여 수업을 이어가는데 힘썼다.
당시 정릉에 위치했던 경신학교의 교사는 6.25전쟁 중 군대가 주둔하며 일부가 화재로 소실되어 학교의 기능을 상실, 1954년 당시 교장이었던 서병호 장로가 종로구 혜화동 산4-6과 성북동 임야 등, 1만 5천 평을 불하받아 학교 부지를 마련했다. 이후 1955년 미국 공병대의 지원으로 목조 가교사를 완공, 1천100명의 학생과 100명의 교사로 재
단법인 경신학원이 설립됐다. 이후 3번의 건축 및 증축으로 오늘의 경신학원이 모양을 갖췄다.
언더우드와 경신학원의 시작
“우리나라 초대교회들은 모두 교육사업을 했습니다. 맥켄지 선교사가 세운 소래교회는 해서제일학교를 세웠고, 풍기성내교회는 영신학당을 세웠어요. 언더우드 역시 언더우드학당을 열고 2년 뒤 새문안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신앙전파와 더불어 교육사업을 함께하며 복음뿐 아니라 깨우치는 교육을 한 것이죠. 교회가 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언더우드의 부인, 호턴은 그의 <조선견문록>에서 “(경신학교는) 주님의 자비로운 은총을 보여주는 기관으로 병원 말고는 이 학교가 조선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것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언더우드 선교사가 1885년 7월 6일, 엘린우드(Frank. F. Ellinwood, 미국북장로교총회 해외선교부총무)에게 보낸 편지중 언더우드 학당의 시작을 알리는 내용을 보면 “매일 아침 몇 명의 소년들이 저를 찾아오는데, 저는 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려 애쓰고 있습니다. 만일 교사로 쓸 만한 건물이 있다면 지체없이 그렇게 할 것이며, 선교사인 제 존재에 대해 지나친 관심만 보이지 않는다면, 개교 첫날부터 많은 학생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저는 이 나라 언어를 배우는데 실제로 도움을 받으면서, 아울러 선교에 좀 더 필요한 공부를 하는데 시간이 빼앗기지 않도록 10명이나 12명 정도의 아이들을 추려서 가르칠 계획
입니다”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학교는 이 시대의 주인공을 만드는 곳
“경신학원의 6번째 이사장직을 맡게 되며, 내가 76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조상들의 유업을 받아 이어가게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정부에서 모든 운영비를 지원받는 학교 특성상 이에 따른 정부의 견제가 있다. 그렇다보니 기독교 학교가 정체성을 지키고 건학이념을 유지해 나아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원석 장로는 “미력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조금이라도 어떻게든 개선하고, 건학 이념을 지켜보자는 열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해서라도 학생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넣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고 말한다.
“중·고등학교는 인격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일은 학원이 아닌 학교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서 장로는 학교가 두가지 책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기독교 정신이 투철한 삶의 자세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를 강조하는 것이며, 두 번째 교회학교는 아이들을 찾아가야하는 반면, 학교는 이미 학교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심어 줄 수 있기에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주님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귀한 생명들을 기독교 정신으로 양육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며, 교사들이 이러한 정신과 결심으로 학생들을 대하고, 교육에 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이사장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학교의 교육은 선생님들이 주체입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며 상급학교 진학을 지도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인격을 바로 세우는, 참으로 소중한 일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인격이 형성되고 인생의 방향이 설정된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소중한 시기인지 모릅니다. 이에 더하여 학부모님들의 사랑과 헌신이 뒷받침되고 있으니, 우리 학생들은 진실로 행복한 존재들입니다. 중·고등학생들은 다음 세대의 희망이 아니라 이미 이 시대의 주인공입니다. 이들의 꿈이 이 나라의 비전이 되고 소망이 됩니다. 경신학원 이사회는 선생님들과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님들이 모두 신바람이 나는 그런 학교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할 것입니다. 이 시대의 주인공인 우리 학생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도전 속에서 이 나라를 이끌어갈, 구김살이 없는, 그리고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책임질, 멋진 인물들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성경을 전하는 일
서원석 장로는 동생 서경석 목사가 설립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상임집행위원으로, NGO 단체인 사단법인 나눔과 기쁨에서 본부장으로 봉사했으며, 사단법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이사로서 10년간 역사와 관련된 봉사를 해왔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실천신학연구소 봉사중인 서 장로는 대한성서공회의 성경 번역·출판·반포 관련 모금사업 책임자로 25년간 일했다.
“저는 해당 국가를 방문해 그 나라의 성경 보급 상황을 조사하고, 보급이 잘 이루어졌는지, 성경이 얼마나 부족한지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한국에 돌아와 모금을 진행했습니다. 세계선교라고 하는 넓은 장의 실제 현장을 25년간 경험하다 보니 세계선교하는 것에 안목을 가지게 되었고, 여행을 통해 수많은 선교사를 만나고 그들이 쉽게 말하지 못하는 속 깊은 어려움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원석 장로는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태국, 중국, 아프리카 지역 등 현지의 어려운 현실을 직접 보고, 현지 선교사들의 현실적 고충을 바탕으로 모금사업을 진행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예배를 드리고 있음에도 성경책을 가진 사람이 목사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책이 너무 비싸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 이유였죠. 모이는 인원이 많건 적건 아무도 성경책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위해 성경을 보급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해온 일입니다.”
서원석 장로의 증조할아버지이신 서상윤 목사 역시 성경 번역과 관련이 깊다. 그는 선교사 존 로스와 함께 성경을 번역한 최초의 권서다. 영국성서공회의 북중국지부 권서로서 성경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온 서상윤 목사는 성경 보급에 힘썼는데, 그의 자손인 서원석 장로 역시 조금 다른 방법으로 같은 일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다.
믿음의 유산
4대째 신앙의 대를 이어오고 있는 서원석 장로는 총회 교육·훈련처 실장 서가영 목사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의 손자 역시 교역자의 길을 걷고 있다.
“제가 아버지이신 서재현 장로님을 많이 존경하다 보니 문득문득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런 경우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하고 말이죠. 아버지는 실력, 경륜 등이 대단하심에도 참으로 겸손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이시기에 제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가 하고 지금도 생각하곤 합니다. 내가 가진 경륜과 상식으로 해결하지 않고 ‘선조들이라면, 할아버지라면,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제 부인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시어머니와 비슷하게 살지?’ 하고 문득 말하
곤 합니다. 우리 부부가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하는 것은 부모님을 비롯해 할아버님, 할머님 모두 너무 훌륭하신 조상을 모셨는데 이들을 통해 믿음의 유산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받은 이 귀한 믿음의 유산을 제 후손에게도 귀하게 넘겨주고 싶습니다. 믿음의 본을 보이고 그들이 존경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받은 것을 넘겨주고 긍정적으로 받아주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석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