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현장에서 ‘성경’과 ‘성서’가 혼용되고 있는 현실을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성경을 번역, 출판, 보급하기 위해 설립한 재단 법인이 있다. ‘대한성서공회’(Korean Bible Society)이다. 1895년(고종 32) 개신교 연합 법인으로 설립되었다. 최초의 한글 신약 성경은 1887년, 신·구약 성경은 1911년에 출판되었던 것으로 역사는 전해준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인쇄소가 없어 일본에서 인쇄해 온 것으로 안다. 성서는 기독교 교리를 기록한 거룩한 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경도 비슷하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록한 최고의 법전을 의미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으로 부르는 것이 좋은가? ‘성서’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그동안 해방 후 두 가지 이름으로 사용, 출판되어 오다가 최근에는 ‘성경’이 더 많이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성서’와 ‘성경’, 어떻게 부르는 것이 그 의미에 더 근접하고 덕이 되고 합당할까? 어떤 명칭이 더 논리적이고 신학적, 신앙적으로 옳은가?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서’(書)는 성인이 쓰거나 성인의 행적(行跡)을 기록한 책이라는 의미이다. ‘성서’는 ‘책’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성서’라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책이라면 그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의미도 포함되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기독교 신앙의 최고 법전이 되는 책이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기록한 가장 위대한 절대 경전이다. 그런데 왜 ‘대한성경공회’라 하지 않고 ‘대한성서공회’라고 했을까? 미국은 ‘미국성경협회’라고 부른다. 당시는 기독교가 막 선교가 되던 시대이니 그 용어의 선택에 그만큼 신학적으로 정확을 기하지 못하고 민감하지 못했을 것으로 본다. 또 당시 사회 분위기로 보아 유학의 보이지 않는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유학에서는 어떤 책에 대하여 ‘서’를 붙여서 사용해 오는 전통이 있다. 그런 문화적 전통에 따라 ‘성서’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우리말은 한자어가 약 70% 정도로 조어가 되어 있다고 한다. 한자로 인하여 많은 단어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성서’라고 부른 데에는 거기에서 파생되는 언어적인 측면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유학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이 있다. ‘사서’(四書)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이다. ‘삼경’(三經)은 역경(주역), 시경, 서경이다. 유학에서의 ‘서’는 공자 맹자 등의 말과 행동을 후세에 제자나 후손들이 기록한 것이다. ‘경’은 성인이 직접 저술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역경’은 주나라 문왕, ‘시경’과 ‘서경’은 공자가 직접 수집하고 기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경>은 일반 책들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록했지만 자의에 의해 쓴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약 40여 명이 BC 1600년부터 AD 100년경까지 기록했다. ‘오직 성령의 감동함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에 의해 장구한 세월 동안 기록한 것이니 인간의 다른 서책과 비교해선 안 될 일이다. 신앙적, 신학적이지도 않다. 인간이 썼다면 성경의 기록이 어찌 가능한 일이었겠는가!
‘성서’라고 부르는 것은 사람이 기록했다는 뉘앙스(Nuance,표현에 따라 달라지는 섬세한 느낌이나 의미)를 풍길 수 있다. 종교에서의 가르침을 기록한 글은 일반적으로 그 품격이 다르다. 그러므로 ‘경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가끔 예배 시간에 사회(인도)하는 분 또는 설교자가 ‘성서’ 몇 페이지 운운하면 매우 어색하게 들린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그 개념이 명확해야 한다. 세상에서 사용하는 습관적 언어는 가급적 피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신앙의 개념을 내포한 단어를 쓰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그러므로 ‘성경’으로 부르는 것이 더 경건하고 합당하지 않겠는가! ‘성경 몇 쪽’ 또는 ‘하나님의 말씀 몇 면(페이지)’ 하면 자연스럽고 품격이 있다. 앞으로는 교회에서 모든 신자들이 ‘성경’으로 통일하여 사용했으면 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