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요. 우리 쪽은 노인네들 뿐이네.”
아내도 힘을 다했지만 지고 나니 속이 상한다는 말투였다. 자리를 바꾸고 보니 좀 지대가 낮은게 어쩐지 이번에는 틀림없이 이길 것만 같았다.
호루라기가 울렸다. 성구는 45도 각도로 몸을 뒤로 제치면서 두 다리를 있는 힘을 다해 뻐팅겼다.
“영차!”
“영차!”
힘이 팔을 거쳐 손끝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절대로 늦추어서는 안돼!!’
숨이 혀를 차고 나왔다. 갑자기 줄이 끊어진 듯 맥없이 끌려왔다. 이 바람에 모두가 벌렁 뒤로 나가 넘어졌다. 그래도 기쁘기만 했다. 애나 어른이나 이기는 것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어때! 내 말대로 하니까 되지?”
아내의 대꾸는 없어도 이미 이겨 놓고 물어본 말이라 성구는 그저 신이 날 뿐이었다.
성구는 갑자기 웃었다. 문득 광주보병학교에서 간부후보생 시절에 했던 기마전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기는 쪽에겐 금주에 외출을 시키겠다는 큰 포상이 걸려 있었다. 극성스러운 성구는 친구들 어깨 위에서 상대편을 잡아 끌어 내린다는 게 그만 팬티자락을 잡고 끝까지 당기는 바람에 팬티가 찢어져 볼기가 드러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는 하도 긴장을 하고 열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웃지를 않았었다.
“자! 이번이 마지막 결판입니다. 다들 줄을 잡으세요.”
심판의 목소리가 울렸다. 성구는 퍼득 잠에서 깬 사람처럼 정신을 차렸다.
“자! 뒤로 자빠져요. 뒤로! 알았지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내가 옆구리를 툭 쳤다.
“자빠져가 뭐예요! 점잖지 못하게끔.”
“뭘? 뒤로 쓰러지면서 당기라는 말인데.”
성구의 말이 끝나자 동시에 호루라기 소리가 귓전을 몰아쳤다.
“영차!”
“영차!”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줄이 꼼짝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뭣들 하는 거야. 나 혼자만 당긴다고 되나!’
숨이 턱에 차고 팔이 저렸다. 끌리는 듯 싶은 느낌이 손끝에서 올라왔다.
“쎄게! 쎄게 당기라구!”
버티고 있던 다리를 지름삼아 원을 그리며 몸이 앞으로 넘어갔다. 줄이 맥없이 수르르 앞으로 끌려 나갔다. 진 것이다.
한 마디 변명의 여지도 없이 참패를 한 것이다.
성구는 풀썩 주저앉았다. 심장이 가슴을 치고 숨이 몰아서 나왔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더니.’
성구는 입을 다물었다. 패자에게는 말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조용히 손을 털고 일어섰다.
‘왕년의 대육군이 줄다리기에 지다니.’
성구는 부끄러운 듯이 웃음을 지으면서 터벅 터벅 운동장 밖으로 걸어 나왔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