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아이의 이름을 짓느라 고심합니다. 아이가 평생 그 이름으로 불려야 하기 때문이며 수없이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이름처럼 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름이 더 특별했습니다. 그들은 이름이 한 인격체 자체를 드러 낸다고 믿었습니다. 이름이 단지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서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그 존재의 본질을 나타낸다고 믿었고, 그의 장래와 깊이 연계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름은 존재 자체였고, 그 이름이 그 이름으로 불리는 자를 대신했습니다.
사실 이름 안에 한 인격의 본질과 활동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 ‘여호와’의 뜻처럼, ‘스스로 계신 분’이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피조물과는 달리 본디 계셨고, 스스로 계신 분이셨습니다. 또한 ‘여호와’, 그 뜻처럼 ‘거기에 계신 분’이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계셨습니다. 거기에 항상 계셨습니다. 거기에 항상 당신의 백성과 함께 계셨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 이름처럼 ‘예수’이셨습니다. 구원자이셨고, 우리를 건져주시는 자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이름이 되셔서, 지금도 그 이름을 부르는 자를 건져주시고 구원해주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의 이름을 아무 때나 부르시지 않는다는 점이 참 놀랍습니다. 많은 이들이 등장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이름을 직접 불러주시는 장면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의 뜻은 ‘열국의 아버지’ 입니다. “모세야, 모세야” 모세는 ‘건져냄’이라는 뜻입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이름과 존재, 이름과 활동이 분리될 수 없는 유일한 분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호명하여 부르시는 이 드문 순간, 그는 그 이름대로 되어갑니다.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이, 모세는 모세가, 사무엘은 사무엘이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실 때,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름처럼 되어갑니다.
이름은 호칭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 안에 존재를 담고 계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친히 불러 주시고 나면, 불림을 받은 사람의 상황과 사태가 이전과는 달라집니다. 이름처럼 되게 하시려고, 또한 그를 통해서 그 이름에 걸맞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시려고 그의 이름 석 자를 부르시는 겁니다.
봄을 앞둔 어느 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할 때, 찬양할 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제 좀 따사한 볕을 쬘 때, 산책할 때, 우리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께 귀를 쫑긋 세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어 우리에게 우리 이름을 들려올 때,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우리의 이름대로 우리를 빚어가고 계신 주님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강영롱 목사
<삼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