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제8대 국왕 현종(顯宗)은 태생부터 험난하고 고된 삶의 연속이었다. 그의 본명은 왕순(王詢)이었는데, 어머니는 5대 경종의 왕비였던 헌정왕후(獻貞王后) 황보씨(皇甫氏)였다. 경종은 4대 광종의 맏아들이고 태조의 맏손자이니, 그는 태조 왕건의 증손인 셈이다.
헌정왕후는 경종의 사후 사저에 살다가 왕욱이란 자와의 사이에 왕순을 낳았고, 왕욱은 이 일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왕순을 낳은 어머니는 바로 세상을 떠났다. 헌정왕후는 6대 성종의 누이였고, 왕순은 성종의 친조카이므로 잘 보살펴 주었으나, 그가 죽고 7대 목종이 들어선 후에는 살해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성종의 누이동생이자 목종의 어머니인 천추태후는 김치양(金致陽)과 정을 통해 낳은 아들을 세자로 삼으려고 왕순을 강제로 머리를 깎게 하였고, 신혈사(神穴寺)에 있는 그를 해치려 하였다. 목종은 신하들과 의논하여 유일한 태조의 핏줄인 왕순(대량원군)을 후계로 세울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병사를 보내 왕순을 개경으로 불러오고, 서북면을 지키고 있던 강조 장군에게 호위를 맡겼다.
우여곡절 끝에 8대 왕위에 오른 현종은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우선 그는 적을 용서하고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사랑의 화신이다. 그를 해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한 사람도 적으로 대하거나 복수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기를 해치려고 온 군사들을 살려주고 도망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거란의 침공으로 몽진을 떠나서 갖은 수모를 당했지만, 그들에게 원한을 품지 않고 모두 용서한다. 또한 황후가 잘못된 간신의 꼬임에 빠져 자신을 배신하였지만, 과거의 정을 생각하며 품어주고 화해하면서 부부의 연을 끊지 않는다.
비록 드라마에서 각색된 장면이지만 이런 현종의 모습에서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화해하라는 하늘의 메시지를 듣는다. 그는 자기를 해하려 했던 죄인들을 용서하고, 그의 적들은 은혜에 감동하여 돌을 내려놓고 충신이 되었다.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오늘 고려의 후손인 한국의 현실에서는 왜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죽이고 복수하고 내치고 원수처럼 싸우는 정치판의 현실이 조상들 보기에 민망하다. 교회도 세속화되어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