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지낸 아무개 씨에게는 심복이 있었다. 그 심복은 주군을 위한 심복의 자세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첫째로, 그는 주군인 대통령에게 무조건 충성하였다. 그의 주군에 대한 충성에 조건이 없었다는 말이다. 둘째로, 그는 주군을 위한 고난의 자리도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주군 때문에 감옥에 가는 것도 영광의 자리였다. 셋째로, 그는 주군을 위해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을 만큼 용감하였다. 넷째로, 그에게 사람들이 돈이나 권력으로 유혹하였지만, 주군을 배신하지 않았다. 다섯째로, 그가 이미 야인이 된 주군을 위하여 충성해도 장래에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을 개의치 않고 충성하였다. 여섯째로, 그의 충성은 오랜 세월 동안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일곱째로, 그는 주군을 겉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그는 성경의 예수님 제자들보다 주군을 섬기는 자세에 있어서는 훨씬 나아 보였다. 물론 주님의 종이라는 우리의 모습보다 몇십 배 뛰어났다. 우리는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다고 하면서도 조건부의 순종이나 사역을 앞세우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주님을 위한 고난의 자리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꼭 감옥이 아니더라도 고난을 감수하려는 마음가짐으로 교회를 섬기고 주님을 모셨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감투와 자리다툼을 위한 정력의 소모가 너무 많지 않았나 살펴볼 일이다. 십자가를 생각할 시간에 ‘누가 큰 자리에 앉을까?’, ‘내 자리는 어디에 있나’라는데 더 마음을 쓰며 살지 않았는가 뒤돌아볼 일이다.
또한 돈과 권력의 유혹에 주님의 뜻을 팔고 합리화시키면서 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때이다. 지나온 세월 동안 주님을 향한 마음에 얼마나 많은 충성의 굴곡이 있고 변화가 많고 변덕이 있었는지 회개하고 뉘우칠 일이다. 그리고 주님을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따르고 본받으려고 노력하였는지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며 살펴야겠다.
사순절이 속절없이 와서 우리의 시간과 생활 속에 자리 잡지 못하고 갈등과 다툼과 분열 속에서 지나가고 있다. 이제 고난주간을 보내고 부활주일을 맞는다. 이 사순절에 주님이 가신 고난의 자리에 있지 못하였으니, 부활의 기쁨을 누릴 자격도 없는 우리 신앙의 현주소가 초라하고 불쌍하다. 고난은 멀리하고 영광의 자리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이 제자라는 이름으로 활보하고 있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신앙과 지혜] 고난주간에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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