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영어 단어에서 배우는 올바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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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 중에 “미워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 “Hate”는 4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 반대말인 “사랑하다”를 뜻하는 “Love”도 마찬가지로 네 글자입니다. “적군(敵軍)”의 복수를 뜻하는 “Enemies”는 7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 반대말인 “친구”의 복수형을 뜻하는 “Friends”도 역시 7자입니다. “거짓말”을 뜻하는 “Lying”은 5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 반대말인 “진실/진리”를 가리키는 “Truth”도 마찬가지로 5글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정적(否定的”을 뜻하는 “Negative”에는 8개의 글자가 들어있고 그 반대말인 “긍정적/적극적”을 말하는 “Positive”도 역시 8글자입니다.  

“아래”를 뜻하는 “Below”에는 5개의 글자가 있고 그 반대말인 “위에”를 가리키는 “Above”에도 5글자가 들어있습니다. “울다”를 의미하는 “Cry”는 3글자이고 그 반대말인 “기쁨”을 가리키는 “Joy”도 역시 3글자입니다. “분노한”을 뜻하는 “Angry”에는 5개의 글자가 있고 반대말인 “행복한”을 뜻하는 “Happy”도 역시 5글자입니다. “옳다”를 뜻하는 “Right”에는 5개의 글자가 들어 있고 그 반대말인 “틀린”을 뜻하는 “Wrong”에도 다섯 글자가 들어 있습니다. “상처”를 뜻하는 “Hurt”에는 4개의 글자가 있고 그 반대말인 “치유”를 뜻하는 “Heal”에도 4글자가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얻는 교훈은 “인생은 칼의 양날”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더 좋은 쪽을 선택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부정적인 면”을 버리고 “긍정적인 면”을 선택해야 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선택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찬송 586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 찬송은 ‘삼일절’이나 ‘광복절’과 같은 ‘나라사랑’을 생각하게 되는 절기에 많이 부르는 찬송입니다. 그 노랫말을 적어봅니다.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일상 속에서 여러 가지 ‘작은 선택’을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진로 선택, 배우자 선택 등 자신의 인생을 좌우하는 ‘큰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올바른 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성경(잠 22:1)에 보면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앉을 때나 누울 때나 걸을 때나, 어디 있든지 우리의 삶을 통해서 가치의 우선순위를 가르치라는 메시지인 줄로 압니다. 인생은 선택입니다. 성공도 선택, 실패도 선택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작은 것부터 좋은 선택을 해 왔습니다. 즉 그들은 좋은 것, 더 좋은 것,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훈련을 받은 셈입니다. 선과 악 중에서 선을 선택할 줄 안다는 말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앞에 참과 거짓, 빛과 어둠, 선과 악, 육과 영이 불가불 싸움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 둘 중에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죄를 따르면 죄의 종이 되는 것이요, 성령께 순종하면 주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하던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과 진리를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약속을 통하여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이요, 그의 풍성한 계획과 일치된 삶을 살도록 성령께서 힘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어느 한국영화 대사 중에 “무엇이 더 중한 디?”가 한국사회에서 유행어가 된 일이 있습니다. 이 말은 ‘가치관’을 묻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어떤 옷을 입을까? 어떤 메뉴로 먹을까? 하는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어느 대학을 갈까? 누구랑 결혼할까? 등 인생의 중요한 선택도 있습니다. 결국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소중하게 여긴 것을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선택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나 신앙적인 모습도 알 수 있습니다. 또 그의 대인관계도 잘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의 궁극적인 선택은 ‘세상’이냐 아니면 ‘하나님’이냐의 양자택일이 될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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