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에 누가복음 23장을 묵상하면서 해골이라 하는 곳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좌우편에 행악자를 보게 된다.
한 강도가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기억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낙원에 이르리라고 약속하셨다. 강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상급은 없었을 것이다. 일찍이 장로로 부름을 받은 우리들은 지교회와 장로회에서 어떠한 삶의 흔적을 남기느냐, 어떠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느냐에 따라서 상급이 달라질 것이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이 있고, 이것처럼 귀한 재료로 만들진 않았지만 나무그릇, 질그릇도 있음을 보게 된다. 주인은 귀한 재료로 만든 그릇에 눈길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귀한 재료로 만들었어도 더러운 그릇은 사용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용할 만한 그릇은 재료의 귀함이 아니라 그릇이 깨끗하냐 여부에 달려 있다.
우리가 깨끗한 그릇이 되기 위해선 피할 것이 있는데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욕망들이 있다. 남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는 욕망을 제어하고, 그리고 명예와 부를 탐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큰 자인 것이고 깨끗한 그릇의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는 힘써야 할 것이 있는데 디모데후서 2장 22절에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하신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쓰시는 깨끗한 그릇이 되어 교회에서 후배들을 보면 사명 잘 감당하도록 기도해 주시고 자라나는 다음세대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헤아리고, 칭찬하고 허물을 덮어주는 장로님들이 되길 소망해 본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이때에 만날 때마다 장로님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또한 기도함으로써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어머님의 품속 같은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로회가 되었으면 한다.
에벤에셀의 뜻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뜻도 되지만 앞으로 우리가 노력을 중단하고 쉬면서 즐기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께서 앞으로 계속 도와주시리라는 뜻도 된다고 한다.
끝으로 장로님들 남은 생애 동안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 에벤에셀의 복이 임하길 기도한다.
신준선 장로
<부산동노회 장로회장, 초읍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