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되면서 공천(또는 사천)과정과 당락(當落)에 따라 사자성어(四字成語)들이 거론된다. 몇 가지를 찾아보자. ①대공무사(大公無私): “일 처리가 공정하고 바르며 개인적인 고려가 없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진평공(晉平公)이 가황양이란 신하에게 물었다. “남양현(南陽縣)에 장(長)자리가 비어 있는데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겠소?” 기황양은 주저 없이 “해호(解狐)를 보내면 반드시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할 것입니다.” 평공이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대는 해호와 원수지간이 아닌가? 어찌 해호를 추천하는가?” 기황양의 대답은 “저에게 물으신 것은 그 임무를 수행할 적임자가 누구인가였지 제 원수가 누구인가를 물으신 것이 아니잖습니까.” 이렇게 하여 임명된 해호는 그 직을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얼마 후 평공이 다시 물었다. “지금 조정에 중직 자리가 하나 비어 있는데 누가 적임자인가?” 기황양은 대답했다. “기오가 수행할 수 있을 겁니다.” 평공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기오는 그대의 아들이 아니오? 어찌 아들을 추천할 수 있단 말이오.” “누가 적임자인지를 물으신 것이지 기오가 제 아들인지 아닌지를 물으신 것은 아니잖습니까?” 기오 역시 모든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해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각 정당의 인재 발굴과 공천과정이 이러해야 되지 않겠는가? ②당동벌이(黨同伐異): “같은 편 사람은 편들고 다른 편 사람은 배격한다.” 후한 때 황제가 어린 나이로 자리에 오르면 섭정을 맡은 태후(太后)의 친인척인 외척들이 실권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후일 황제가 장성하면 이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때 그 중심에 선 세력들이 바로 환관(宦官)들이었다. 환관들은 결속력이 유달리 강하고 책임이나 정치적 경중보다는 자신들의 이해득실에 민감한 편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기 마련이었다. 유교적 교양을 쌓은 선비들은 이들의 농단으로 국정이 문란해지는 것을 막고자 명망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렇게 외척과 환관 그리고 선비집단이 서로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내 편을 위하고 다른 편을 무조건 배격하는 폐단을 벌였다. 이를 당동벌이라고 한다. ③어부지리(漁父之利): “도요새와 조개가 서로 물고 싸우다가 둘 다 어부에게 잡히고 만다.” 전국(戰國)시대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자 연나라에서는 합종책(合從策)으로 유명한 소진의 동생 소대를 조나라 혜왕(惠王)에게 보내 설득하게 했다. “제가 조나라로 오는 동안 역수(易水)를 지나다가 큰 조개가 속살을 드러내고 햇볕을 쬐고 있었는데 한 도요새가 나타나 조개 속살을 쪼아대자 조개는 껍질을 닫아 도요새의 부리를 물어버렸다. 도요새는 비가 내리지 않으면 넌 죽고 말 것이다 하며 서로 양보하지 않았다. 이때 그곳을 지나가던 어부가 그 조개와 도요새를 모두 잡아가고 말았다.” 이처럼 연나라와 조나라가 헛된 싸움을 하면 두 나라 모두 진나라에게 먹히고 말 것이라 설득했다. 조나라 왕은 이 설명을 듣고 연나라 공격 계획을 취소해버렸다. ④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뜻이다. TV 정치평론의 패널들 말을 들어 보면 똑같은 사안을 놓고도 여·야에 따라 전연 다르게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말로 아전인수(我田引水)의 샘플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계에서 만들어진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전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세계적 언어가 되어버렸다. 불편한 ‘자기중심주의’의 전형이다. 얼마 전 가톨릭 교회에서 교인들의 생활지침으로 ‘내 탓 네 덕’ 운동을 펼친 적이 있는데 정치인들은 이 캠페인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옳고 그름’을 기준 삼지 않고 ‘내 편 네 편’(진영 논리) 또는 ‘좋고 싫음’을 기준으로 삼으니까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보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국민화합이나 총화전진은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