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심령이 가난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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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주 인기가 있던 광고 중의 하나가 KT ‘올레’라는 광고입니다. 그 내용을 TV를 통해서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런 겁니다. 한 나무꾼이 도끼로 나무를 찍었는데 그 나무가 쓰러지면서 지나가던 멧돼지를 덮치게 됨으로 그 멧돼지를 덤으로 잡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나무꾼이 도끼를 샘에 빠뜨렸는데 산신령이 아닌 미녀 삼총사가 금도끼를 가지고 나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숲에서 보물찾기를 하던 중 한 소년이 보물이 적힌 종이가 아니라 산삼을 캤습니다. 

이때 멧돼지를 덤으로 잡은 나무꾼, 미녀 삼총사가 샘에 빠뜨린 일반도끼 대신 금도끼를 가지고 나와 그 금도끼를 받게 된 나무꾼, 보물찾기에서 보물 내용이 적힌 종이가 아니라 산삼을 캐게 된 소년, 이 세 명 모두가 하나같이 “올레”를 외쳤습니다.

허황된 이야기지만 참 신선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매력적인 광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천국을 소망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천국보다 다른 것을 더 원합니다. 천국에 대해 강퍅합니다. 천국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천국이 대해 냉담합니다.

그러나 천국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갑니다. 그러자면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가난으로 허덕이며 재정적으로 궁핍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물질적인 가난에 대해서 말씀하신 사모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는 것은 말씀을 영적인 곤핍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완전한 무능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전적으로 부족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명성, 부, 능력 등 무엇을 이루었든지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에 소욕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비운다든가 내려놓는 것이 잘 안됩니다. 그러기에 영적인 추구보다 육적인 추구에 더 열정적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꿈보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붙드는 것이 더 많습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이 인정하는 최고의 감탄사 ‘올레’는 바로 이런 이야기들입니다. 지금 흔히들 하는 말로는 ‘대박’이라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올레를 외치게 하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성경이 말씀하는 ‘올레’는 세상의 올레와 같지 않고 또 다른 의미의 올레를 우리에게 던져주십니다. 그것이 오늘 성경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가장 유명한 말씀 중의 하나가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의 소위 말하는 산상수훈입니다. 그 산상수훈 가운데서도 오늘의 본문을 가리켜 팔복이라고 합니다. 그중 살리고자 하는 말씀은 3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세상이 주는 감탄사 ‘올레’가 아니라 하늘이 주는 감탄사 ‘올레’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영적인 대박입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천국을 소유하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흔히 그런 말을 합니다. 자기 바둑을 둘 때는 수를 놓칠 때가 많지만, 남의 바둑에 훈수를 둘 때가 잘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훈수 둘 때는 2급 이상 바둑 실력이 더 높아진다고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바둑에 ‘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적 삶이 ‘내’가 없고 오직 주님만으로 내 심령을 가득 채우면 진정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됩니다. 그럴 때 욕심, 질투, 시기, 미움 등등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고 온전히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께 구하십시오. 성령님의 은혜로 내 속의 쓸데없는 것들을 다 정리해 주시고 오직 주님만 볼 수 있게 해주시고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땅의 복을 충성하게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강승춘 목사

<주영교회, 총회부흥전도단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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