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나는 국제펜한국본부 인천지부 회원으로 정식 가입했다. 전주에서 인천으로 이사 온 지 20여 년이 다 됐지만, 그간 한국본부 회원으로 또는 이사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굳이 지방회원으로 있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싶어 그러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나의 짧은 소견이었음을 솔직히 시인하면서 뒤늦게나마 자진해 진실로 인천지부 회원이 되겠다고 언약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몹시 기뻤다.
며칠 전 입회원서를 써서 인천지부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미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으니 입회원서를 제출하지 아니해도 됩니다. 지금 원로회원으로 계시니 회비도 안내셔도 됩니다”라고 하는게 아닌가.
“그래요? 이렇게 후히 대접해주시니 그간 저의 잘못이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정말 정중히 사과하겠습니다. 그러나 회비만은 납부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잘못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머리 숙여 마음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며칠 전 어느 월간잡지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어느 날 교양강좌 시간이었다. 담당 교수는 여성 회원에게 앞에 나와 칠판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 20명의 이름을 쓰라고 했다. 교수의 지시대로 가족, 친척, 회사 동료 등 생각나는 대로 썼다. 다시 그분들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한 명씩의 이름을 지우라고 했다. 그 교수의 말대로 한 사람씩 지우기 시작했다. 결국 칠판에 남은 이름은 진정 사랑하는 가족뿐이었다. 그러자 여기서도 한 명씩 지우도록 했다. 침울한 표정으로 부모님의 이름을 지웠다. 더 지우라고 하기에 울음을 터트리면서 자식의 이름을 지웠다. 남은 이름은 오직 남편뿐이었다. 교수는 왜 최종 남은 이름이 남편이냐고, 그 이유를 말하라고 했다. 그녀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얼마 안 있으면 부모님이 내 곁을 떠나시고, 또 자식도 결혼해서 그러하겠지만 남편만은 한평생을 같이 할 사람이기에 최종 남은 이름이라고 그 사유를 밝혔다. 과연 그렇다. 설득력 있는 답변이다. 그렇다면 오늘 부부간의 사랑은 어떠한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럴까?
가장 나를 보호해줄 사람은 늘 가까이에 있기 마련이다. 어찌해서 이런 일을 깨닫지 못하고 나는 그간 먼 곳만 바라보며 생활해 왔던가. 우리의 속담에 “가까운 이웃이 먼 데 사는 사촌보다 낫다”라든가, “먼 데에 있는 단 장이 가까이에 있는 쓴 장보다 못하다”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아무리 가까운 친척일지라도 멀리 살면 가까이 사는 이웃처럼 손쉽게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좋은 저택을 사는 것보다 좋은 이웃을 얻으라”(스페인 속담) “산과 강은 좋은 이웃과 같다”(영국 속담) “이웃 사람을 사랑할지언정 간섭하지 말라”(프랑스 속담) 등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이웃을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로 이루어진 금언이다. 가장 행복한 사랑은 ‘이웃 간의 사랑’임을 일깨워 주고 있지 않는가?
인간의 고립을 말하는 고독과 외로움은 가슴에 서려 있는 감정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상태로 방치해 둔다면 우리는 한없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지 사귐을 통해 가까운 이웃끼리 서로 사랑함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오늘도 깊이 깨달으며 살아가야겠다.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