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지성] 눈물과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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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눈물이 있다. 만일 인간에게 눈물이 없다면, 너무 각박하고 살벌해서 세상을 살아갈 재미가 없을 것이다. 눈물은 마음의 표현이며, 거짓 없는 진실의 표현이기도 하다. 눈물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눈물이 있다. 기뻐서 흘리는 눈물, 슬퍼서 흘리는 눈물, 분하고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그렇지만 이런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엇갈린 자연 발생적인 눈물보다도 의미적 시각에서 볼 때, 이런 눈물과는 차원이 다른 눈물이 있다. 그것은 이웃과 겨레, 인류를 뜨겁게 사랑하는 심정으로 흘리는 눈물, 시들어가는 영혼들을 사랑하는 심정으로 흘리는 아가페적 눈물, 조국이 처한 현실과 장래를 생각해서 예레미야(Jeremiah) 선지자처럼 우국충정의 심정에서 흘리는 눈물이 있다. 이런 눈물은 자기 부정과 희생이 뒤따르기 때문에 뼈를 깎는 듯한 아픔의 눈물이기도 하다. 

어버이는 자녀를 위해 눈물과 정성을 다하고, 스승은 제자를 위해 눈물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 특히 국방 책임 지도자는 국가 수호를 위해 눈물과 정성을 다하고, 의사는 환자를 위해 눈물과 정성을 다하고, 목자(牧者)는 길 잃은 양을 위해 눈물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 아울러 국가를 움직이는 지도자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사심 없이 눈물과 정성을 다할 때, 국정(國政)의 난제들이 하나하나 순조롭게 풀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시대나 국민들의 민성(民聲)이 때때로 많이 표출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지도자들이 국민을 사랑하는 뜨거운 눈물과 정성이 부족해서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의라는 간판은 내걸었으나,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 눈이 어두워 정의를 사랑하는 뜨거운 눈물이 말랐을 때, 국민의 원성은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일 국가의 지도자들이 구약성경의 요나(Jonah) 선지자처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욘 1:12)라고 하는 눈물겨운 자책의 심정을 가질 때, 공동체와 그 나라의 역사는 올바로 나아가지 않겠는가? 

오늘날 국민 각 계층의 집단마다 자신들의 집단적 이기주의의 분출로 나라가 조용할 날이 없다. 물론 이들이 자제하고 반성할 점이 너무나도 많지만, 사실상 더 큰 문제는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국가의 지도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 나라를 움직여 온 기성 정치인들과 국정을 맡은 국가의 지도자들이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자기 진영적 이기주의의 가슴으로만 일을 처리하려고 할 때,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시편 기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라고 했다.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오는 일이 있을지라도 국정을 맡은 지도자들이 사심 없는 애국애족의 정신을 가지고 눈물과 정성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할 때, 어떠한 난제도 풀려나갈 것이다. 

일찍이 고당 조만식 선생은 그 나라 상품 하나하나에는 그 나라의 국민정신과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 특히 우리 사회의 건설 현장에 눈물겨운 정성이 부족한 만큼 부실이 초래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눈물과 정성의식이 투철해야 한다. 옛말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란 말이 있다. 이는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신앙생활에도 눈물과 정성 없이는 하나님과 이웃을 기쁘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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