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뜨거운 강연…‘예수 모르고 살고 있는 나라’
‘전라도가 고향이지요’ 필자 안영로 목사는 그동안 미국 교회와 한국교회의 자료를 토대로 선교사 역사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식으로 기술하였다. 필자 안 목사는 수피아여고 교목실장, 서남교회 담임목사로 본 교단 90회 총회장을 역임하였고 영성과 지성과 인품이 뛰어난 한국 교회 지도자 중에 한 분이시다. 특별히 평신도와 장로들을 사랑하고 지금도 친교를 많이 나누시는 온유한 성품의 목자이시다. /편집자 주
언더우드 선교사의 강연
한국 선교를 성공리에 수행했던 미국 북장로교 언더우드 선교사는 1891년 9월 안식년을 맞이하여 미국 시카고에 머물게 되었다. 때마침 한국 선교 강연을 부탁받았던 언더우드는 시내에 있는 맥코믹신학교 강당에서 신학생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한국 선교 현황을 보고하게 되었다.
당시 청중 가운데 언더우드 선교사의 보고 강연에 귀를 기울이면서 차근차근 메모한 신학생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맥코믹신학교 졸업반에 재학중이었던 테이트(L. B. Tate)였다.
테이트는 그의 강연을 청취하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아직도 지구상에 예수를 모르고 살고 있는 나라가 있다니…’ 하면서 열심히 노트에 메모를 하고 있었다. 그 강연에 연사로 왔던 언더우드 선교사는 자신의 고생스러웠던 이야기를 거침없이 보고하였다.
이날 강연회에서 큰 은혜를 받은 테이트는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가슴이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그 감격스러웠던 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한국을 잊을 수가 없어서 여러 번 언더우드 선교사를 만나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맥코믹신학교 게시판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았다. 테이트도 다른 학생들의 틈에 끼여 그 게시판 앞으로 다가섰다.
‘미국 신학생 해외선교대회’
테이트는 자신의 수첩을 꺼내들고 메모를 하였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강사가 언더우드 선교사란 사실이었다. 그렇게 만나기를 원했던 언더우드 선교사였음은 물론 한국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테이트는 다른 신학생들과 함께 10월에 개최되는 ‘미국 신학생 해외선교대회’에 참가하기로 하고 그 머나먼 남쪽 내슈빌을 향해 달려갔다.
내슈빌은 종교의 도시로 동서남북을 가로질러 많은 교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더욱이 미국 남장로교 총회 본부가 자리하고 있는 도시였다. 또한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월간 잡지 ‘다락방’의 출판사가 있는 곳이었으며, 각 교파의 출판사마다 내슈빌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내슈빌을 방문하였다.
이러한 도시에서 ‘미국 신학생 해외선교대회’를 개최한다니 신학생이면 누구나 한번 꼭 방문하고 싶었던 도시였고, 더욱이 미국 남장로교에 소속된 신학생들은 그러한 마음이 더욱 간절하였다.
날짜와 시간을 메모해 두었던 테이트는 혹시라도 늦으면 어떻게 할까 걱정한 나머지 대회장의 문을 열기도 전에 일찍이 대회 장소에 나타나 대회장에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미국 남장로교 직영 신학교인 리치먼드유니온신학교에서의 레이놀즈(W. D. Reynolds)와 존슨(C. Johnson) 신학생도 이 모임에 참가하였다. 다행히 같은 교파의 신학생인지라 친근감이 있었다.
드디어 시간이 되자 연사로 언더우드 선교사가 등단을 하여서 한국 선교 현황의 보고 강연을 하였다. 언더우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6년간 한국에서 활동했던 사진들을 보여주며 낱낱이 보고에 임하였다.
“신학생 여러분, 지금 한국은 여러분을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은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예의가 바른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유교가 왕성하고, 일찍이 중국을 통해서 불교가 들어왔기에 역시 불교의 사찰이 여기저기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직도 샤머니즘이 왕성하여 농촌, 산촌, 어촌 할 것 없이 온통 샤머니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종교성이 강한 민족이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테이트는 쉴새없이 노트에 그의 강연 내용을 전부 기록하였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보고 강연이 끝나자 한국인 윤치호란 사람이 강사로 등단하여 한국 역사에 관해서 강연을 하였다.
윤치호는 일찍이 서양 문화를 접하기 위해서 일본에 건너가 일본 동경에 있는 게이오대학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접하고 귀국한 인물로서, 그의 생각에는 하루속히 한국도 미국의 기독교 문화를 접하는 것이 근대화의 길임을 인식하고 국내에서 보수 세력을 타파하고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세력들이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인물이었다.
신학생! 한국은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선교에 헌신하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던 테이트는 윤치호의 강연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고 한국 선교사로 지원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때 테이트는 강연이 끝나자 곧바로 내슈빌에 있는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를 찾아가서 한국 선교사로 지원하겠다면서 지원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에서는 당돌한 신학생의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목사님, 제가 지원서를 써놓고 갈 테니 잘 부탁합니다.”
“신학생, 아직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할 계획이 없으니 그냥 돌아가세요.”
실무를 맡았던 목사는 몇 번이고 그의 지원서 제출을 만류하였지만 막무가내였다.
“목사님, 저는 학교에 돌아가서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기도를 확실하게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테이트는 담당 목사의 권유도 뿌리치고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의 사무실을 나왔다. 그날 따라 내슈빌의 가을 날씨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렇게 붉게 물든 나뭇잎들은 찬연한 가을향기를 풍기면서, 테이트 신학생 앞길을 인도하는 듯이 어느덧 태양열은 그를 비추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찬송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안영로 목사
· 90회 증경총회장
· 광주서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