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 66권 가운데 설화적 재미로는 ‘사사기’가 창세기에 버금간다. 삼손이니 기드온이니 하는 주인공들 이름은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친숙하다. 여호수아에서 시작해 나중에 사무엘로 이어지는 ‘사사’는 한자로는 士師라 쓰고 영어로는 Judge 즉 판사로 번역하는데 이 타이틀에는 부족사회의 자연발생적 지도자라는 뜻이 얼른 들어오지 않는다. 때로는 이민족에 저항하는 의병대장 같기도 한데 사사기 끝에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는 말씀은 세상 사람들만이 아니고 그들을 이끄는 역대 사사들에게도 적용되는 증언으로 들려온다. 사사기를 보다가 이 땅의 판사들로 생각이 이어지는 것은 호칭이 유사한 그들의 역할이 사람에 따라 가변적이어서인가 보다.
판사의 직무는 죄 지은 사람에 대한 고발을 받아서 유‧무죄를 가리고 국법에 따라서 합당한 형벌을 내리는 것인데, 판사가 정치의 영향을 받는 수가 생겨 문제다. 나쁜 판사는 죄 없는 사람에게 벌을 내리고, 죄 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지 않거나 가벼운 벌에 그치고,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는 사건에 판결을 미루어 사실상 처벌을 면제해 준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라고 헌법이 요구하는데 정치에 빠져든 판사는 양심을 악마에게 팔아버리고 권력의 뜻을 따라간다. 판사도 현대사회의 이념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초연할 수 없으니 진보, 보수, 중도의 구분을 피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구체적인 사안에 대하여 최대한으로 정의를 실현키 위해 편견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믿어지는 올바른 정신의 법관이 대한민국 법원에서 날로 줄어들고 있지 않나 하는 회의가 깊어진다.
민주정치하면서 정권교체가 반복되는 가운데 대립하는 정치세력 간의 권력투쟁이 사법의 개입을 불러오기에 이르면 ‘정치재판’이 불가피하게 된다. 지난 몇 해 동안 우리 국민들은 법과 정치의 유착이라고 믿어지는 사례들을 다수 목격하면서 법관 일반에 대한 신뢰가 약해짐을 어찌할 수 없었다. 과거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로 단순히 금권에 의한 정의의 실종을 탄식했다면 이제는 정치의 영향과 간섭이 법원위에 안개처럼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무슨 무슨 연구회니 하는 사적 조직으로 법관들이 편가르기를 하고 그런 연줄을 따라 승진이 이뤄지는가 하면 판결에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던 판사가 정당에 곧바로 차출되어 국회 의석을 차지하게 되니 법원은 마침내 신뢰와 권위를 상실한다.
이 나라 정치의 정상에 올라있는 두 사람이 비정치적인 사유로 형사피고인이 되었고 이들에 대한 최종 심판에 따라 정국이 크게 요동치게 될 조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재판이 진행중인데 이미 판사들의 양심과 3심제라는 안전장치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면 어떤 판결이든 ‘정치재판’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근년에 두 전직 대통령이 대역죄를 저지르거나 재산을 해외에 쌓아 놓지 않고도 중형에 처해지고 세상이 다 아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임기중 처벌을 벗어나는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법의 정치화를 체감했다.
법관들이 임무와 사명에 대한 대오각성이 있기를 기대하는데 성경을 펴서 사사기를 정독하면 자신의 역사적 역할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김명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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