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이젠 ‘앙코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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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칼뱅은 예배 중에 음악을 극도로 제한하였다. 칼뱅의 개혁교회에서는 회중이 함께 부르는 제창 이외에 합창도 독창도 기악도 없었다. 물론 성가대도 없었다. 칼뱅은 중세 가톨릭교회가 부패한 원인 중에 음악도 한몫을 했다고 보았다. 그는 음악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최고의 수단이지만, 심각한 영적 폐해를 주는 악마의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예배 음악은 복음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찬양해야 한다. 예배 중에 어떤 음악도 인간이 자기도취에 빠져서 공연장처럼 무대음악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이런 현상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죄’라고 했다. 중세 말기의 교회 음악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오르간의 현란한 기교와 성가대의 테크닉을 중시하는 음악적 세속화에 빠져서 하나님께 향한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본래 예배 중의 음악은 회중의 노래가 기본이고, 성가대는 회중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의 성가는 회중과 주고받는 형태를 취했다. 공연하듯 자기도취에 빠져 노래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것을 존중한다면 지금도 성가대가 찬양할 때 회중이 마음으로 그 찬양을 함께 불러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찬양을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린 후에는 모두 “아멘”으로 화답하며 성가를 마쳐야 한다. 결코 인간이 노래를 감상하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 예배는 시작 전부터 공연 분위기이다. 찬양팀의 복장부터 시작하여 노래의 내용과 부르는 자세가 무대음악을 방불케 한다. 성가대도 사람을 향하여 현란한 기교와 악기를 동반한 채 공연하듯 노래하고 교인들은 그것을 감상한다.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는 찬양 속에 하나님의 영광은 없다. 

자기도취에 빠진 인간들의 찬양이 예배당을 공연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인간이 인간을 위하여 노래하고 감상하는 무대음악이 되어버린 것이다. 성가대나 독창자가 부르는 노래의 마지막은 높은음을 한없이 길게 늘어뜨리며 고함을 지르듯 마친다. 그리고 마지막 음이 끝나면 우레같은 박수 소리에 도취 된다. 어떤 교회에서는 박수와 함께 함성을 지른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박수나 함성을 넘어 ‘앙코르!’, ‘한 곡 더!’라고 외치는 교회도 있었다. 이 타락한 예배 음악을 어찌할꼬! 한국교회는 아모스 선지자의 경고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암 5:23)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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