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희 선교사] 있는 대로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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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의원에는 속초를 중심으로 한 강원지역의 환자들이 많이 찾아왔다. 병원은 금세 자리를 잡았고, 생활이 안정되었다. 그러나 나는 가난하고 형편이 궁핍한 환자가 있으면 병원비를 받지 않았다. 수술을 하더라도 비용이 얼마라고 미리 말하지 않고, 물어보면 “있는 대로 내세요”라고 했다. 속초에서의 병원 경험이 훗날 의료 선교사로 나를 부르시기 위한 훈련 과정이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줄 그때는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

간성에서 서울까지 치료를 받기 위해 수차례나 왕래했지만 악화되기만 해 몸져누워 지내던 청년이 있었다. 얼굴이 백지같고 온몸은 비쩍 말라 있었다. 내가 간성에 있는 동안 청진기 하나만 들고 그에게 왕진을 다니곤 했는데, 병력을 볼 때 두 가지 질병에 해당한다 싶어 처방을 내렸는데 마침 잘 맞아 회복되고 있었다. 청년이 영화가 보고 싶어 늦가을의 추운 날씨에 극장을 다녀올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내가 간성을 떠나 속초로 옮긴다고 하자, 그 청년이 속초에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다가 제1호 입원 환자가 되었다. 아직 충분히 낫지 않았으니 완전히 낫고 싶다는 것이었다. 병원 문을 열자마자 입원한 그는 치료를 받고 완쾌되었다.

속초에서 병원을 개업한 후에 잊지 못할 환자가 참 많았다. 하루는 젊은 부인이 아기를 업은 친구의 부축을 받고 걸어 들어오는데 얼굴이 창백했다.

“어디가 아프세요?”

“하혈을 했어요.”

얼른 수술실에 눕히고 진찰을 하니 자궁 외 임신이었다. 혈압은 거의 제로 상태였다.

“남편은 어디 갔습니까?”

“고기 잡으러 배 타고 바다에 나갔어요.”

긴박한 상황이었다. 큰 병원으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환자에게는 일분일초가 급했다. 함께 온 아기 엄마와 환자에게 급히 수술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수술 동의서나 보증금을 말할 새도 없이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그리고 출혈 부위를 잡아 환자의 생명을 구했다.

하루는 한밤중에 40대 남자가 업혀 들어왔다. 제주도에서 어선을 타고 속초 앞바다에 왔다가 동료들과 함께 잠시 속초 시내에서 놀기로 하고 입항했다고 한다. 술을 마시고 혼자서 배로 돌아가던 길에 불량배들을 만나 시비가 붙었는지, 뭇매를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을 사람들이 발견해 업고 왔다. 진찰 결과 내상이 심해 응급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만 보호자도 없고 동료들을 찾을 길도 없어서 급히 경찰서에 연락했다. 경찰관에게 입회해서 수술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봐달라고 요청했다.

개복해 보니 에스결장과 직장 벽에 심한 내출혈이 있어 부기가 심했고 색도 거무스름했다. 나는 왼쪽의 건강한 대장 부위를 밖으로 내놓고 일단 수술을 끝냈다. 수술 경과도 좋았다. 그 어부는 2차 수술도 잘되고 회복을 하여 퇴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진 돈이 없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도망치듯 퇴원하고 말았다. 훗날 들리는 말로는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대동의원 원장님이 믿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 모르지만, 나도 믿어보겠다.”

그 말에 나는 큰 위로와 기쁨과 감사를 맛보았다.

인근에 가끔 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부르는 선배 의사가 있었다. 하루는 긴급 전화를 받고 달려갔더니 선배는 수술 중이었다.

맹장 부위를 열어놓았는데 위천공(胃穿孔, 위벽에 구멍이 뚫리는 일) 환자인지라 선배보다 내가 맡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급히 우리 병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수술한다고 해도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미 수술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위천공 환자는 여섯 시간 이내에 수술을 하면 거의 살아나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 사망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이미 72시간이 지난 상태라 살아날 가망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대로 두면 반드시 절명할 것이고, 수술하면 혹시 1퍼센트라도 회생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의 부인에게 수술하겠다고 말하고, 환자가 쇼크 상태임에도 수술을 감행했다. 개복하여 복강 안을 씻어내고 천공 부위를 봉합하여 수술을 끝냈다. 하지만 혈압은 여전히 제로였다. 밤새 애를 쓰며 혈압을 올리려 했지만 변함이 없었다. 나는 침통한 심정으로 환자의 부인과 가족들에게 말했다.

“부인, 밤새 제가 어떻게 했는지 보셨지요? 아무리 해도 혈압이 오르지 않습니다. 수술을 받아야 할 시간을 놓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으니 집으로 모시고 가면 어떻겠습니까?”

부인은 동의했다. 그리고 아침 6시경, 수액을 계속 주입하도록 조치하고 다른 주사액도 놓아주면서 환자를 보냈다. 혹시라도 환자가 눈을 뜨면 아무 때라도 연락하라고 가족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전 11시쯤 열 살짜리 환자의 아들이 급히 달려와 소리쳤다. “우리 아버지가 눈을 떴어요!”

그 길로 나는 소년과 함께 그의 집으로 뛰어갔다. 환자는 눈을 떴지만 혈압은 아직 쇼크 상태였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 해주었고 그는 완쾌되었다. 이 환자 역시 형편이 어려워 치료비를 한 푼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너무나 힘든 상황에서 극적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큰 위로요 기쁨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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