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두 개의 참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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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시간이 되어 다시금 라이터주인이 없는 빈자리를 보면서 지나갔다. 그러자 아침에 만났던 사람이 아닌 다른 노점상 주인이 불렀다.

“선생님 저 좀 보세요.”

순모는 발을 멈추면서 좀약주인을 바라다 보았다.

“왜요? 무슨 일이 있으세요?”

“아침에 말씀을 드린다는 게 깜빡 잊었는데요. 이걸 드리라고 하셨어요.”

두툼한 흰 봉투를 꺼냈다.

“저에게요? 어느 분이요?”

“아드님 집에 가신 박 선생님이요.”

“네?”

순모는 뜻밖이었다. 흰 봉투를 받아들면서 이것이 무엇인지가 몹시도 궁금했다.

“아드님 집이 어딘데요?”

“미국 LA랍니다.”

“네?”

순모는 움칠할 정도로 놀랐다. 아들이 미국에 있다니? 그렇다면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 그런 아들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노점상을 하면서까지 온갖 수모와 고생을 겪어야만 했단 말인가.

“놀래셨지요? 그렇지만 박 선생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런 말은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순모는 어리둥절했다.

“아니 아들이 LA에서 뭘하고 있는데요?”

“변호사요!”

“네?”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변호사라면 중류층 생활인데 의식주 문제는 걱정이 없는 것이다.

“그게 말이에요. 박 선생님 고집 때문이지요. 아들은 빨리 정리하시고 오시라는데도 박 선생님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면서 안 가시는 거에요.”

“그런데 이 노점상은요?”

“건강상 하시는 거에요. 박 선생님은 국방경비대 출신으로 6.25 동란때 아주 혁혁한 공을 세우셨답니다.”

“계급은요?”

“주임상사였답니다. 아주 의지가 대단한 분이세요.”

어느새 끼어들었는지 두 상인이 번갈아 가면서 대답을 했다.

“혹 그동안 제가 박 선생님께 실례를 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아니에요. 박 선생님은 대한민국 사람이 선생님만 같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며 언제나 칭찬을 하셨습니다.”

순모는 머리끝까지 붉어지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지하철로 내려갔다. 흰 봉투를 뜯었다. 최고급 파카 만년필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흰 종이 쪽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선생님 아들에게 다녀오겠습니다. 하도 오라는데 가지 않았다가는 영영 삐칠까봐서 다녀와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제 마음과 꼭 같습니다. 과거에 군인이 아니셨습니까? 국가안보에 대한 말씀이나 걷는 모습이 당당한 군인상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녀와서 육군사관학교를 한 번 견학했으면 합니다. 그때 같이 가실 수 있으시겠는지요. 여기에 조그마한 물건을 드립니다. 글을 많이 쓰신다니 필요할 것이라 생각이 들어 이 만년필을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박창수 드림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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