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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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친구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보았던 일이다. 계산대 앞에서 두 명이 작은 말다툼을 하는데 얼핏 들으니 서로가 밥값을 내겠다고 다투는 모양새다. 얼마 후에 타협이 되었는지 한 사람이 계산을 하면서 그들은 식당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예전에는 저런 정겨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면서’ 잠시 옛날을 회상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가 젊었던 시절엔 비록 사는 것은 궁핍해도 마음만은 넉넉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식당에 친구들이 가서 식사한 후에 음식값은 보통 여유가 많은 사람이 내는 것이 관례였다. 물론 돈을 내는 친구는 조금 으스대는 경향이 있고 얻어먹는  경우에는 조금은 위축되기는 하여도, 크게 자존심을 상하지 않고 친구간의 우정으로 포장되곤 하였다. 그것은 당시에는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이어서 서로가 돕는 차원에서 이해되는 경우였다. 그러기에 요즘 직장인들이 많이 모여드는 점심 시간에, 복잡한 시간에도 함께 온 그 많은 사람들이 식사 후에 줄을 서서 식대를 각자가 계산하기 위해 따로따로 계산하는 것을 보면서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매일 먹는 점심 값을 각자가 계산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현상이 되었지만, 친구들간에 모여 식사를 하면서는 그 식사값을 지불하고 ‘덕분에 잘 먹었네 고맙다’라고 인사를 받고 속으로는 흐뭇한 마음을 갖게 되면서, ‘정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는 말씀이 진리의 말씀이라고 다시 한번 확인하는 옛날식이 더욱 인간적이라고 느끼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느껴보기도 했다.

우리는 인간 승리의 표본으로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태어나서 2살 되던 해에 걸린 급성 열병으로 인해 시각과 청각을 잃었고 그 후에 말까지 할 수 없는 삼중고(三重苦)를 겪었지만 이 모든 환란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작가 교육자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 승리와 감동을 준 위인이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성공적인 삶을 일구어내는 데에는 앤 설리반(Anne Sullivan, 1866-1936)이라는 특출한 특수교사의 헌신적인 가르침과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성질이 광폭했던 헬렌 켈러를 7살때부터 그가 죽기 직전까지 50여 년간 평생 동안 자신의 온갖 것을 바쳐 오로지 헬렌 켈러를 세계적인 인물로 성장하고 유지하게 하는데 바쳐 드디어 그를 세계적인 인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그의 한없는 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진정으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귀중하다’는 진리를 알고 이를 느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더 많이 베풀어야 한다고 배웠다. 여기서 보통은 남에게 베푸는 것이 물질적인 것이라야 한다고 여기는 점이 문제다. 그러나 물질로 남에게 베푸는 것이 가장 확실한 것이긴 하지만, 때로는 물질이 아닌 다른 면으로도 베풀 수가 있다. 마음에 가득한 슬픔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이런 해결점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같이 의논하든지, 해결할 방법이 없으면 그의 호소를 들어만 주어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요즘 중‧고등학교에서는 소위 ‘왕따’라는 행위가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럴 때 그를 감싸주는 따뜻함은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이런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는 어떤 모양이라도 복을 받기에  충분한 조건이 된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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