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평전] 소국 네덜란드, 부강국이 된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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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색깔의 청어(靑魚)는 유럽의 북해(北海)와 북극해(北極海)에 광범위하게 분포 서식하는 어류로서 유럽인들의 일상적인 식자재였다. 청어는 특히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3국, 영국 해역에서 많이 잡혔다. 11~13세기 무렵부터 소국(小國) 네덜란드인들은 잡은 청어를 해안으로 가져와 내장을 발라내어 소금절임 하여 저장해두고 먹었다. 청어잡이는 네덜란드 어부들만 아니라 북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흔한 직업이었다. 그런데 네덜란드인들의 청어잡이는 네덜란드 발전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네덜란드 어부들은 14세기 중반에 청어 가공방법을 개발했다. 청어 뱃속의 유문수(幽門垂·pyloric caeca)라는 작은 주머니에서 소화를 돕는 효소가 분비되는데 네덜란드 어부들은 내장을 제거할 때 이 유문수와 췌장을 남겨두고 염장하면 신선도를 훨씬 오래 유지할 수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 이후 네덜란드 어부들은 인근 연안에서 벗어나 북해 먼바다까지 나가 더 많은 청어잡이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먼바다로 나가려면 기존의 어선(魚船)으로는 어렵고 새로운 형태의 어선이 요구되었다. 1416년, 마침내 네덜란드 항만 수도 암스테르담 선박제조자들이 선체(船體)는 길게 선상갑판 양옆은 볼록하게 건조하여 내부를 널찍하게 하면서도 거친 파도에 거뜬히 견딜 수 있는 배를 건조했다. 선박의 내부구조도 선상(船上)에서 곧바로 청어의 내장 제거와 소금 건조 등의 가공을 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이렇게 해서 원양에서 장기간에 걸쳐 마음껏 청어잡이를 할 수 있는 쌍돛어선을 탄생시켰다. 쌍돛어선 출현으로 네덜란드 어부들은 청어를 잡자마자 곧바로 귀환하지 않고, 5주 이상을 바다에서 계속 고기잡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청어가 많이 서식하는 보다 먼 원양에서 어로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심지어 1년여 동안 계속 어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귀환할 때는 당연히 수백 톤의 청어를 어획하여 돌아왔다. 어부들 중에는 1년여에 2억 마리를 어획하기도 했다. 결국 네덜란드 어부들은 인근 다른 나라 어부들에 비해 압도적인 청어잡이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이후 네덜란드는 전 유럽의 청어시장을 장악했고, 드디어 수십 톤에 이르는 청어를 폴란드와 프랑스, 라인강을 따라 독일까지, 멀리는 러시아까지 수출했다. 

네덜란드 어부들이 청어를 잡으러 북해(北海) 먼바다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일연의 어로작업 경영방식에 혁신이 일어났다. 그동안의 어업은 가업(家業) 수준의 노동력이면 충분하였지만, 원양(遠洋)어업은 분야별 인력배치, 나아가 일정 규모의 자본, 항구 접안의 기반시설이 뒷받침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선박의 규모와 기능도 더욱 확대 개발 개선 건조했고, 인력(人力)도 항해사, 내장가공 전문일꾼 등으로 전문화했다. 시간당 2천 마리의 청어 내장을 처리하는 기능 즉 청어를 일정하게 절단하여 포장하는 작업도 기능별로 세분하였다. 이른바 인력 전문화를 추구했다.

드디어 네덜란드 정부가 나섰다. 고기잡이와 청어의 손질, 판매까지를 아우르는 법(法)규정을 제정했다. 이는 상품의 품질을 유지하고 모든 가공청어의 품질을 동일하게 유지시키려는 정부 차원의 청어가공 입법화였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렇게 국가제도로까지 청어잡이 규모와 가공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청어를 담는 통(桶)의 크기까지도 통일하고 통의 겉면에 ‘홀란드 청어’라는 도장까지 찍도록 규정했다. 요즘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상품의 규격 통일화를 하고 라벨링 등의 업무를 이때 시작했다. 이 결과 네덜란드 청어잡이 어로와 가공 관리 수준이 최고조에 달했다. 

마침내 네덜란드 청어잡이 선단(船團)이 조직되었다. 그렇게 되자 네덜란드 어선들은 해적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네덜란드 정부는 어부들의 청어잡이와 가공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해군함대를 파견하였다. 그것 뿐 아니었다. 그 당시 유럽 남부지역의 농작물 수확량이 형편없이 감소하자 북쪽의 발트해로 청어잡이를 갔던 네덜란드 출항선들은 귀국할 때 북쪽 나라들의 호밀과 밀을 싣고 남부지역에 공급하는 일도 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프랑스에 들러 저렴한 프랑스 와인을 싣고 돌아왔다. 네덜란드인들은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네덜란드 정부는 암스테르담 항구를 전 유럽의 물류(物流)를 커버하는 허브 항만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유럽의 소국(小國) 네덜란드는 세계 1등 해양부강국(海洋富强國)이 되었다. 

김동수 장로 

•관세사

•경영학박사

•울산대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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