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깊은 산골짜기에서 래프팅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강변의 기암괴석과 바위틈에 뿌리내린 노송, 파란 하늘과 초록빛 강물을 경험하며 여유롭게 즐기는 래프팅이 될 줄 내심 기대했건만 현실은 반대였습니다.
조교는 래프팅 내내 소리를 지르며 “노를 힘차게 저어라. 박자를 맞춰라. 왼쪽 더 빨리 저어라. 노를 들어라. 멈춰라…” 계속해서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어르신 한 분이 입을 열었습니다. “조교양반, 살살 좀 다뤄줘요. 우린 훈련하러 온 게 아닌데… 게다가 조교양반은 노를 물속에 담가두고만 있으니 우린 힘들어요. 같이 노를 저읍시다.”
그러자 빨간 모자를 눌러쓴 조교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노를 안 젓는다고 불평이십니까? 그럼 제가 노를 물속에 담그지 않고 빼보겠습니다. 한 번 앞으로 가보십시오.” 그런데 웬일입니까? 8명이 힘을 합쳐 노를 저어도 고무보트는 제자리에서만 맴돌 뿐 앞으로 나가지를 않습니다. 조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직이 말합니다.
“제가 물속에 노를 담가두고 있으니 놀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는 방향타를 잡고 있었습니다. 방향타를 잡는 일은 노젓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힘듭니다. 방향타를 잡고 있기에 배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불만 있는 분 있습니까? 자 그럼 다시 노를 젓겠습니다”그 후로 일행은 구령에 맞춰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열심히 노를 젓는다고 배가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방향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열심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축구선수가 골을 넣었어도 오프사이드가 되면 무효고, 야구선수가 공을 잘 쳐냈어도 선을 넘어가면 파울이 됩니다.
예전에 인천항을 떠나 중국으로 향하던 선박이 인천 앞바다의 개펄에 걸려 꼼짝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앞서가던 화물선을 추월하기 위해 항로를 1.8km 벗어나면서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중국까지의 거리는 수백km인데 그중 1.8km는 짧은 거리입니다. 하지만 항로를 이탈했을 때 개펄 위에 걸려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만조 때까지 8시간을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빠른 길 같아보여도 항로를 벗어나면 제대로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빠른 속도에만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빠른 길이 아닌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을 던져 봅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전 9:11)
유상진 목사
<영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