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다 보면 권투, 레슬링, 격투기와 같은 싸우는 경기가 많이 나옵니다. 저렇게 싸우는데 관중들은 열광하고 즐거워합니다. 때론 피도 흘리며 싸우는데 폭력이며 불법적이지 않을까? 심판은 싸움을 말리지 않고 조정자의 역할만 하는가? 그리고 게임이 끝나면 서로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싸우고 나서 서로 위로해 줄 수 있을까?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각 링 같은 지정된 장소와 허용된 범위 안에서 싸움의 규칙과 약속을 지켰으며, 경기를 조정하는 권위 있는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게임의 법칙이면서 합법화되는 조건일 것입니다. 이 게임의 법칙을 어기게 되면 불법이 되며 문제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생도 경기와 같습니다. 사회에서, 교회에서 등 살아있는 조직에서는 크고 작은 문제가 존재합니다. 문제가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를 잘 해결하면 건강한 조직이 되고, 해결하지 못하면 병든 조직이 된다고 합니다. 장로는 조직에서 조정자의 역할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 장로들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요? 우리는 늘 뭔가 비범하고 독특한 해결 방법을 찾곤 합니다. 그러나 공기와 물처럼 소중한 것은 언제나 평범한 데 있듯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현재라는 평범함 속에 동행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조정자 자격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말씀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장로가 어떻게 세상에서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장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맛 즉, 진리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세속에 물들어 버리면 결국 세상 사람들로부터 밟혀 조정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나의 조건으로 장로로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 능력과 권세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장로는 예수님 법을 떠나면 장로의 맛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나무에 가지가 붙어있지 않으면 결국 버림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 많은 사람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에서 존귀한 장로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을 나타내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나갈 때 조정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장로의 조건이 갖춰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준모 장로
<군산노회 장로회장,
발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