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후스 같은 인물’ 존재함에 감동
주기철 목사,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로 순교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일본의 종교정책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제 추방당해 본국에 머물고 있던 클라크(C.A. Clark, 곽안련) 선교사가 본국 교인들에게 편지형태 문서를 발표했다. 선교사 경력 40년 중 30년을 평양신학교 실천신학 교수로 보낸 그로서는 일제 강점기 활동한 한국 장로교회 목사들이 대부분 제자였다. 그랬기에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깊었다.
그는 신사참배 문제로 고통받는 한국교회 상황을 알리고자 했다. 당시 미국으로 추방된 선교사들 가운데는 한국교회 목사들이 신사참배를 수용하고 일제에 협력하는 비겁한 모습을 보인 것을 비판하면서 “한국교회는 신앙을 배반했다”라고 말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클라크는 달랐다.
“한국교회가 처한 암울한 상황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선교사 중에는 한국교회가 ‘배교했다’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 근거는 일정 기간 투옥되었다가 풀려났거나 투옥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상당수 목사와 교회 지도자들이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는 정부 측 주장을 받아들여 신사참배를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목사가 후스가 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전체 교인의 반 이상이 믿음 생활한 지 10년도 안 되는 상황에서 지나친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후스 같은 인물들이 다수를 점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선교 역사가 50년을 갓 넘긴 한국교회에, 믿은 지 10년도 안 되는 한국 교인들에게 후스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처럼 짧은 선교역사를 지냈음에도 한국교회에 ‘후스 같은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후스 같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세계 모든 기독교인이 평양 언덕 위에 있는 평양에서 제일 큰 교회 중의 하나, 아름다운 벽돌 예배당의 주기철 목사라는 이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는 지난 5년간 거의 모든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매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황 앞에 선 루터처럼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클라크는 평양 산정현교회의 주기철 목사를 중세 가톨릭 교회의 종교 폭력에 맞서 죽음으로 신앙 양심을 지킨 순교자 후스, 로마 교황 앞에 당당히 선 교회 개혁자 루터로 비유했다.
그러면서 클라크는 주기철 목사 말고도 당시 한국교회 전체 30만 명 교인 중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 투옥된 교인이 200명이나 되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미국교회에 이 비율을 적용하면 미국 교인 1억 2천만 중에 적어도 7만 명 이상이 “사당에 끌려가 우상 앞에 절하기보다는 죽음을 택하겠다”라는 각오로 투옥당해야 할 것인데 “과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하고 질문하며 미국 교인들의 반성을 촉구했다.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일제 말기 신사참배 거부운동자들을 한국교회와 우리 민족의 자존심으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주기철 목사는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이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같이 제물이 되었다. 제물을 제단에 바쳐야 했다. 그곳에서 죽임을 당했다. 사도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제물이었다. 마지막에 순교로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제물이 되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