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톡] 우리 곁에 있는 난민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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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나는 이집트의 예수피난교회에 가본 적이 있다. 올드카이로(Old Cairo)의 구석진 어느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그곳에 간 기억이 난다. 그 골목길에서 놀던 아이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아이들은 허름한 모습으로 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의 눈빛만은 얼마나 아름답고 예뻐 보이던지! 그때 나는 젊었고 군목을 전역한 후 기독교아시아연구원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예수피난교회는 예수께서 태어나자마자 헤롯의 핍박을 피해 도망친 곳이라는 성서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므로 그곳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예수의 어릴 적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다시 갈릴리 나사렛으로 이주하셨다. 나는 나사렛도 가보았는데 그곳도 이집트의 예수 피난교회가 있던 곳과 별 차이가 없는 낡고 좁은 골목이었다.

이집트의 예수 피난처는 오늘 우리 나섬에게 의미 있는 공간이다. 나섬의 사역지와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난민 예수라는 서사는 오늘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이웃의 모습과 닮아 있다. 우리 공동체에 나오는 아이들 중 난민 지위를 받은 이란인 아빠와 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마치 별나라에서 온 이방인처럼 말이 없고 언제나 그늘진 모습이었다.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말을 못했는데 엄마가 한국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후에 아이는 한국 유치원에 다니면서 조금씩 아이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예수께서도 처음에는 부모가 사용하는 말만을 배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의 아이들과는 함께 놀 수 없을 만큼 소외된 아이로 자랐을 것이다.

난민 예수를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이들이 있다. 치앙마이에서 만난 탈북 여성들이다. 그들에게도 그런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중국에 혹은 북한 이곳저곳에 이름도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이 아프게 떠오른다. 자신의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탈북 여성의 간증이 생각난다. 얼마나 가슴 아픈 인생인가!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 없어 놓고 왔다는 엄마의 가슴은 찢어지고 무너진다. 이 고통은 얼마나 더 지속 돼야 할까?

예수는 난민으로 사셨다. 어쩔 수 없이 베들레헴에서 이집트로 도망치듯 이주했던 아기 예수는 오늘날 누구인가? 지금 우리 이웃으로 살고 있는 이주민들이다.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탈북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주고 싶다. 튀르키예에서 만난 아이, 탈북 여성의 아이들, 그들은 내게 난민 예수의 현현으로 다가온다. 난민 예수가 우리 곁에 오셨다. 지금은 우리에게 오신 난민 예수를 모실 시간이다. 그들이 밖에서 기다린다. 이제 우리 교회가 먼저 문을 열자.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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