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개혁과 교회갱신의 완성은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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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교회는 500여 년 전 가톨릭교회와 너무나 비슷하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시대와 같이 신학교가 너무 많고 성직자(목사와 목사후보생)가 넘쳐난다. 요즈음 한국교회는 교인 몇 명당 목회자 또는 목사후보생이 몇 명이나 있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교회는 예배당 건물을 크고 화려하게 짓는데 경쟁적으로 건축하다가 심지어 어떤 교회는 건축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부도가 나고 성전건축을 하던 공사는 중단되고 교인들은 흩어져야 하는 비극적인 일도 있지 않는가? 한국교회가 외적 성장과 경제적인 부를 쌓는 것을 자랑하거나 부러워하고 있지 않는가? 개척교회나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몇 명의 교인을 데리고 있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은 안정된 교회로 가서 목회하기를 바라지만 경쟁자들이 많다. 한국교회는 많은 종류의 헌금 봉투를 비치해 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교회는 성직자 즉 목회자를 잘 모셔야 한다는 이유로 잘 대접하다가 때로 그들을 권력과 물질의 유혹에 빠지게 할 때도 있다.

종교개혁 당시에 루터는 타락한 교회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분연히 일어났다. 루터가 95개조를 붙였던 것은 당시 교회와 성직자들을 일깨우려는 경고장이기도 했지만 결국 전 세계적으로 개혁운동이 일어나게 하는 불씨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루터는 파면을 당했고 작은 섬으로 망명가서 유배지에서 평소에 꿈꾸었던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그의 꿈은 사제가 해석해 주는 것을 듣고만 있어야 했던 모든 성도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는 진리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루터는 유배지에서 은신처를 만들고 성경번역에 전념하였다. 

루터가 번역한 성경은 구텐베르크(J. Gutenberg)의 활판 인쇄술을 통해서 모든 믿는 자들이 마음대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서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퍼져 나갔다. 바울과 같이 개혁자들과 성경번역 선교사들은 매이고 고난을 당하지만 말씀은 계속 번역되고 인쇄되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다.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의롭게 올바르게 사는 복음을 전한다. 

우리는 500여 년이 넘도록 종교개혁을 회상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 시대의 교훈으로 삼아 정신을 차리고 올바르게 살고 교회가 참된 교회 되게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한국교회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시대적 사명과 선교적 사명을 바로 알고 잘 감당할 것을 다짐하고 새롭게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다.

‘개혁’ ‘부흥’ ‘갱신’이라는 말은 ‘변화’ 또는 ‘새로워짐’을 뜻한다. 이 말들의 영어 단어 첫머리에 ‘re’로 시작하는데 ‘다시’라는 의미가 있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말들이 여럿 있으나 개념은 전혀 다르다. 종교개혁(reformation)은 혁명(revolution)이 아니다. 이 두 단어는 물론 체제나 형식에서 큰 변화를 염두에 두고 쓰는 말이었다.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선교의 특성은 매우 독특하다. 한국인이 가는 곳마다 선교사가 있고, 그들은 복음전도와 교회를 개척하므로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어간다. 또한 한국 선교사들은 가는 곳마다 학교를 세우고 현지 일꾼들을 양성하고 엘리트교육을 통해서 미래의 선교기지들을 만들고 확장해 가고 그곳에 현지인 지도자들을 배치하고 있다. 

‘다시’ ‘변화’와 ‘새로워짐’을 체험하는 ‘개혁’ ‘부흥’ ‘갱신’을 내가 먼저 실천하고 결단하는 기회가 왔다. 개혁운동은 구체적으로 교회의 부흥과 개인 나 자신의 갱신 운동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내가 사는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개혁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에 우리는 ‘Protestant’(신교도), 항의하고 저항하는 교회가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프로테스탄트교회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참되고 살아 움직이며 개혁하는 프로테스탄트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이광순 박사

<더라이트미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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