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인간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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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875년 3월 26일 전주 이씨 후손으로 황해도 평산군에서 태어났다. 1895년 구한말에 미국 선교사가 세운 배재학당에서 수학하던 중 독립협회에 참여 1898년 무능하고 부패한 고종의 하야를 외치다가(갑신정변)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 조선 최초의 선교사인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의 집요한 구명 운동에 의해 무기징역으로 감형, 1904년 6년 만에 석방됐다. 20대 청년 이승만은 옥중에서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집필하였는데 여기에서 5천년 동안 지속되어 온 우리나라의 왕정(王政)을 민주공화정으로 탈바꿈시키고 세계화와 선진화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제시했다.

1904년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나 6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조지 워싱턴대 학사, 하버드대 석사, 프린스턴대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이때 맥아더 장군과 민족자결주의 선언으로 식민지 국가의 큰 희망이 되었던 우드로 윌슨 대통령과도 만나게 된다. 1910년 일시 귀국하여 YMCA 간사를 하다가 다시 도미,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폭력적 항거보다 외교를 통한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함과 동시에 국민들의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이주민이 가장 많았던 하와이에 정착하여 육영사업에 매진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임시정부가 세워질 때 초대 대통령으로 옹립, 1922년 도미, 1930년 미국에서 한국독립을 위한 적극적인 외교활동, 1942년 얄타회담에서 미소의 한반도 통치방안 비판, 1945년 해방 후 40년 간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 좌‧우의 내전 상태와 공산주의 위협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1948년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3대 대통령인 1960년까지 재임했다. 1948년 스위스나 프랑스에 앞서 여성 투표권을 부여했고, 토지개혁으로 사회안정과 경제발전을 도모했으며, 국가보안법 제정, 여수반란진압, 5천여 명의 간첩색출, 33만여 명의 남로당원을 숙청하여 대한민국 공산화 저지, 2만 7천여 명의 반공포로들을 석방하는 강수를 두며 미국에 압력을 가하여 기적적으로 한미상호 방위공약을 체결하여 한국전쟁 극복과 1953년 휴전 이후 대북전쟁 억제와 안정적인 안보 환경을 보장받았다. 교육 입국 정책을 수립하여 문맹을 퇴치, 원자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56년 한미원자력협정을 이끌어 내고 126명을 원자력 전문가로 육성하기 위해 해외유학을 적극 추진하였다. 4.19의거 발생 시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으니 나는 성공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1주일 뒤 자진 하야했다. 이화장 집무실의 소박한 의자와 책상과 다른 방에 있던 기워 입은 그의 옷, 그리고 하와이 망명 시절에 뜻있는 해외교포의 후원으로 주택과 생활비를 해결해야 했던 생활에서 그의 검소, 청렴한 삶을 엿볼 수 있다. 1960년 4.19의거 후 하야 1주일 뒤 하와이로 출국, 5년 뒤인 1965년(90세) 해외에서 영면한 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다행히 전직 대통령 5명의 아들들이 한 자리에 모여 초대 대통령 이승만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에 동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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