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이 결정되는 시간은 6초라고 합니다. 사람의 얼굴은 80개의 근육으로 되어 있는데 이 근육으로 7천 가지의 표정을 지을 수 있습니다. 꾸준한 얼굴 운동을 하면 얼굴이 환해지며 좋은 첫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민수기 6장에 기록된 아론의 축복기도에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은 없습니다. 구약에서 ‘얼굴’은 존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에게 향하여 빛을 비춘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은 하나님께서 얼굴빛을 비춰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은혜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광야는 자기 힘으로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무릎을 꿇지 않으면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아론은 무릎을 꿇고 간절히 복을 빌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복을 비는 자일뿐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지키시는 복”(샤마르)입니다. ‘주의하여 돌본다’ 는 의미입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보면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끔찍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이 있지 않으면 광야의 시간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항상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남아프리카 잠비아 북부 고산지대에 사는 바벰바족 마을은 범죄가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부족에는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한 특별한 처벌 방식이 있습니다. 누군가 죄를 짓게 되면 마을 한복판에 세워둡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그를 빙 둘러쌉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다음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고 창피를 주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은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그를 칭찬하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비록 잘못하여 죄를 지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진심 어린 칭찬을 듣게 되면 그 사람은 흐느껴 울며 자신의 잘못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집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새로 태어났음을 축하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디아코니아를 이루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서로를 축복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공동체는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복 주시고 지키시기를 원하며 얼굴을 네게 비추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