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너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평안한 시절이다. 학생들은 개학 후 2-3개월 공부가 농익어지는 때이고 각 단체나 기업에서도 가속도를 낼 만한 시절이다. 산하에는 새로운 잎들이 자리잡는 때요, 감나무도 감꽃을 매달고 있는 때요, 집안 화단에는 모란이 피고 있을 때다. 이런 호시절에 응당 시를 쓰는 이와 시를 읽는 일이 있을 것이다. 지상 시화전 또는 눈으로 읽는 시낭송회를 가져보기로 하자. ①“꽃들은 서로 화내지 않겠지/향기로 말하니까/꽃들은 서로 싸우지 않겠지/예쁘게 말하니까/꽃들은 서로 미워하지 않겠지/사랑만 하니까//비가 오면 함께 젖고/바람 불면 함께 흔들리며/어울려 피는 기쁨으로 즐겁기만 하네/더불어 사는 행복으로 즐겁기만 하네//꽃을 보고도 못 보는 사람이여/한철 피었다 지는 꽃들도/그렇게 살아간다네//그렇게 아름답게 살아간다네”(이채/5월에 꿈꾸는 사랑) ②“칼로 물을 베는 식의/사랑 싸움을/참 많이도 했습니다/하나님/아름답다 못해 쓸쓸한/당신과의 싸움은/늘 나의 눈물로/끝이 났지만/눈물을 통해서만/나는 새로이 철드는/당신의 아이였습니다//푸른 보리를 키우는/오월의 대지처럼/나를 키우신 당신/가슴에 새를 앉히는/오월의 미루나무처럼/나를 받아 주시는 당신/당신께 감히 싸움을 거는 것은/오월의 찔레꽃 향기처럼/먼데까지 도달해야 할/내 사랑의 시작임을/믿어 주십시오, 하나님.”(이해인/오월의 아가) ③“자기의 아픈 이야기, 슬픈 이야기는/그리도 길게 늘어놓으면서/다른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슬픈 이야기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네/아니, 처음부터 아예 듣기를 싫어하네//해야 할 일 뒤로 미루고/하고 싶은 것만 골라 하고/기분에 따라 우선순위를 잘도 바꾸면서/늘 시간이 없다고 성화이네//저 세상으로 떠나기 전/한 조각의 미소를 그리워하며/외롭게 괴롭게 누워 있는 이들에게도/시간 내어주기를 아까워하는/건강하지만 인색한 사람들/늘 말로만 그럴듯하게 살아있는/자비심 없는 사람들 모습 속엔/분명 내 모습도 들어 있는 걸/나는 알고 있지//정말 왜 그럴까/왜 조금 더/자신을 내려놓지 못하고/그토록 이기적일까 우리는…”(이해인/왜 그럴까, 우리는) ④“이 성스러운 부활절에/저희들의 믿음이 부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저희들이 당신의 뜻에 순종하는/그 마음이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권력과 부정에 굴복하지 아니하고/정의와 사랑을 구현하는/그 힘을 저희에게 주시옵소서.”(피천득/부활절에 드리는 기도) ➄“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오월은 모란의 달이다/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得了愛情痛苦(득료애정통고)-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失了愛情痛苦(실료애정통고)-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신록을 바라다보면/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참으로 즐겁다/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나는 오월 속에 있다/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피천득/오월) ⑥“산다는 것이/어디 맘만 같으랴//바람에 흩어졌던 그리움/산딸나무 꽃처럼/하얗게 내려앉았는데/오월 익어가는 어디쯤/너와 함께 했던 날들/책갈피에 접혀져 있겠지/만나도 할 말이야 없겠지만/바라만 보아도 좋을 것 같은/네 이름 석자/햇살처럼 눈부신 날입니다.”(목필균/오월의 어느 날)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