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행복한 선택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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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옛 ‘마을’ 역할… 장로, 청년들 가교 역할 노력

 청년들에게 “안정된 길 가라”는 말 보다 

“한번 도전해보라”고 충동질하고 싶은 마음 

생각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죽음으로써 내게 ‘순교자의 아들’이라는 유산을 물려주신 아버지를 비롯해서, 나를 위해 기도해준 외할머니, 외삼촌 등 수많은 분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분들의 기도에 의지하며 살아왔기에 나는 가장 힘들고 지쳤을 때도, 인생의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생각했을 때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시기를 버텨내고 보니 나를 곁에서 강하게 붙들어주고 신앙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많은 신앙 좋은 분들과 좋은 인연들이 나타났다. 이 섭리를 생각할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된다. 나는 한 번도 버려진 고아가 아니었다는 것을, 언제나 하나님의 각별한 보호를 받는 귀한 아들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사무엘상 1:27)

청년들은 갈급하다

“장로님, 이 길이 제게 맞는 길일까요?”

2013년 7월, 곤지암 소망교회 수양관에서 열린 청년부 수련회에서 강의를 마친 직후, 한 청년이 나를 따로 만나자고 했다. 조용한 방으로 가서 이유를 들어 보니 진로 고민 때문이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원하던 분야의 일을 막 시작하긴 했는데, 당장 전망이 밝지도 않고 서른에 곧 접어드는 나이도 부담스럽다 보니 ‘과연 잘한 선택인가?’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어른에게 지혜를 구하는 일은 예전에나 있었지 요즘 세대는 그런 필요를 전혀 못 느낀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내가 겪어본 바로는 그렇지 않다. 예전에도 어른 말을 안 듣는 젊은이들은 있었고, 요즘도 어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하는 젊은이는 있다. 다만, 전과 달리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잘 모를 뿐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옛 ‘마을’의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누구보다도 장로들은 청년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지혜를 구할 수 있는 어른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망교회 청년부 수련회에 강사로 초청받아 곤지암 소망수양관에 갔다. 참석한 청년들은 사뭇 진지하고 집중력 있게 강의를 들어줬다. 나도 청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들과 이야기할 때면 아직도 내 가슴 속에 뜨거운 열정과 생생한 상상력이 넘친다.

어찌 보면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 시대의 옛날 이야기라 흥미가 덜할 것 같은데도 청년들이 집중해서 들어주는 것은 내 인생 역정에 독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내가 한 일은 우리 사회가 일반적으로 선망하는, 공부를 통해서 성취한 직업이 아니다. 대기업 성공스토리들과도 다른 분야에 위치한다. 바로 그 점이 독창적이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자극과 영감을 주는 모양이다.

내가 한 사업은 ‘텍스타일’, 즉 원단 소재를 개발해서 제직하고 날염하고 염색, 가공해서 의류‧패션업체들에 공급하는 일이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 춤추는 패션 트렌드를 예측하며 새로운 패턴과 디자인의 원단을 개발해 생산하는 기획자로서 가업을 일궜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생산하기보다는 주로 기획을 도맡아 하고 협력공장 수십 곳과 네트워크를 이뤄 결과물을 내는 사업이었다.

요즘에야 텍스타일이 특이한 분야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1960년대 후반, 내가 뛰어들 당시에는 아주 희귀한 분야였다. 이런 일이 있다는 것조차 아는 이가 드물었다. 이런 연유로 내가 사업을 시작하고 발전시킨 과정을 이야기하면 청년들의 눈이 반짝인다. 물론 그 눈 속에서는 두려움도 읽힌다. 익숙지 않은 분야에 뛰어들어 자기 가능성을 시험해보기에는 지금까지의 삶이 너무나 평탄했기 때문이리라.

안정된 중산층 가정에서 헌신적이고 교육에 열성적인 어머니의 영향 아래 자란 청년들이라면 부모가 정해준 길을 따라 ‘스펙’을 쌓고 그 범위 내에서 일을 찾아왔을 것이다. 다만, 그런 청년들이라 해서 인생을 건 도전을 꿈꾸지 않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삶을 살아왔을수록 그 삶을 박차고 나오기 위한 용기와 에너지가 그만큼 더 많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청년들이 볼 때 분명 ‘어른’이지만 “안정된 길을 가라”는 식의 보수적인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만한 실력, 조건을 갖췄으면 이제는 한번 도전해보라”고 충동질하고 싶은 마음이 늘 가득하다. 수련회에서 만난 청년들에게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일이든, 파트타임 일자리건 아르바이트건 열심히 하면서 ‘내가 꿈꾸는 분야를 위하여 돈 받으며 연습한다’고, ‘몇 년 후 내 사업을 하기 위해 지금은 배우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일해라. 일이 진행되는 작은 과정 하나도 놓치지 말고 성실하게 배워야만 네 사업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그냥저냥 월급 받는 사람들하고는 다른 평가를 받을 것이고, 너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동료, 네게 투자하고 싶다는 후원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번은 외국 청년에게 이런 조언을 한 적이 있다. 2012년 미국 LA에서 열린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북미주대회에 참석한 후 보스턴에 사는 딸에게 가기 위해 미국 국내선 비행기를 탔을 때 일이다. 옆자리의 준수하게 생긴 아시아계 청년이 공손하게 “창가 자리가 좋으시면 자리를 바꾸어 드릴까요?”라고 묻는데 호감이 생겨서 대화를 나누게 됐다. 중국인인 그는 베이징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전자공학 박사 과정을 마친 수재였다. 취직을 위해 LA에서 면접을 보고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가벼운 대화 중에 내가 그에게 ‘자기 사업을 해보라’는 말을 던진 것이 계기가 돼서 우리는 장장 세 시간 반 동안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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