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니 벌써 어언 70년 가까운 머나먼 세월의 이야기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학생들을 좋다는 학교에 보내는데, 좋은 평가를 받는 선생님 반에 배정되어 열심히 각오를 다짐하던 때였다. 학기 초에 ‘장래의 희망이 무엇인가?’에 대답하는 설문 조사가 있었다. 친구들은 제각각 생각하던 훌륭한 직업들을 적어냈고 심지어는 대통령이라고 말한 친구도 있지만, 나는 내가 원하던 ‘K 중학교에 입학’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그때는 좋은 학교에 입학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열심히 공부하던 가운데 어느덧 1년이 흘러 입학시험을 치를 때가 되었다. 그동안의 내 성적으로는 입학이 불가능하다는 선생님에게 사정해서 희망하던 중학교에 겨우 입학원서를 제출하고, 시험 전날 학교에 가서 수험번호를 받으면서 주의 사항을 듣게 되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어떤 학부형이 “너는 몇 번이냐?”고 묻기에 “저는 459번인데요”라고 대답하니 “너는 합격했네” 라고 하시기에 “왜 그러죠?” 하니 “너는 4+5에 9니, 9 땡으로 합격이야” 하시기에 농담인줄 알았지만 ‘정말 그런가?’ 하면서 속으로는 은근히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또한 지난 1년 동안 내 딴에는 열심히 공부했고, 온 가족이 나의 합격을 위해 기도했으니 합격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든 소원대로 중학교에는 합격하였고 그늘지지 않은 청소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으며, 그때부터 야망이 많은 친구들과 수학하면서 나의 미래를 다져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을 마치면서 이제는 정말 나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하여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애초부터 이과계통은 적성이 맞지 않고 문과에서 ‘주위 사람들이 추천하는 대로 변호사가 되어 법학을 전공해서 법의 맹점에서 어려운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정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라는 가상스러운 생각을 갖고 법대에 진학했으나, 공부를 계속하면서 이 길이 내가 원하는 반듯한 진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하던 공부는 계속해야 앞으로의 진로에서 필요한 자격을 갖춘다고 여겨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남자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병역을 마치고 결혼도 하면서, 미국 이민길에 올라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으니, 이국땅에서의 고달픈 이민 생활은 무슨 야망을 갖고 이를 실천할 여유가 없는 고달픈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기에 학창시절부터 뇌리에 박혀있던 ‘야망을 가져라’는 실천할 여유가 없이 빠른 세월만 바라보는 처지에 놓여버렸다. 그러나 그런 생활 속에서도 내 나름대로 생활 태도를 지녔으니 그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신분 상승에 대한 ‘야망’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성숙된 인간상이 되는 것’이었다.
언제나 시간을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조건이기에 이를 지키려고 평생을 노력했다.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경주하며, 타인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남에게 보여주기가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신실한 사람이기에 노력하며, 친구가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에 망설이지 않고 나에게 연락할 수 있는 인간성을 갖추고 있으며, 당연하게 이에 즐거운 마음으로 응할 수 있고,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여 항상 주님의 부르심에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며 대답하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되면 ‘야망을 이룬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