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희 선교사] 세상과 복음에 빚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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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 병원을 개원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환자가 늘기 시작하면서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응급 환자가 찾아오면 그때마다 수술을 했고, 선택 수술은 주로 밤에 했다. 꼬박 사흘 밤을 연속으로 새며 수술을 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 삶에 대해 점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수술비나 진료비를 비싸게 받지도 않고, 더러 돈을 받지 않는 환자까지 있어 큰돈도 벌지 못하고, 혹여 내가 돈을 벌어 모은다 해도 이렇게 바쁘기만 하니 언제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 나의 인생은 이대로 좋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가 1973년쯤이었다. 여러 날을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문득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속초는 어촌으로서의 특징과 바다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더 뚜렷했다. 어민들은 대개 영세했고, 배를 가졌다 해도 30~50톤에 불과한 작은 배들의 선주에 불과했다. 때로는 그렇게 열악하고 보잘 것 없는 작은 배로 원양어업을 나가기도 했다. 기름을 채우고 얼음과 그물, 식량과 어부들까지 고용하는 등 실로 많은 투자를 해서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먼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혀서 몰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일이 생길 때면 속초 분위기는 참으로 침울했다.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잠기고 안타까워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런 어부들을 생각할 때, 불현듯 이런 질문이 내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강 원장, 많은 돈을 줄 터이니 저런 배를 타고 원양어업 다녀오지 않겠는가?”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내 대답은 분명했다.

“못 가겠습니다.”

그런 배를 타고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면 생명을 잃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제야 생선 한 마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시세에 따라 얼마의 값을 주고 생선을 구입해서 맛있게 먹을 수는 있다. 허나 그 생선이 아무리 비싸진다 해도, 나는 고귀한 생명을 걸 자신이 없다. 그런데 어부들은 그토록 귀한 목숨을 걸고 생선을 잡아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감사하자는 생각은 그 당시 주된 연료로 사용되던 연탄으로도 이어졌다.

“강 원장, 돈 많이 줄 테니 천 미터 땅 속에 들어가서 하루만 석탄을 캐오지 않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못하겠습니다”이다. 당시 매스컴을 통해서 거의 연일 탄광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가스가 언제 폭발할지, 갱도가 어떻게 무너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연탄 한 장도 귀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어디 생선 한 마리와 연탄 한 장뿐인가? 모든 분야에서 많은 분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고되고 힘든 일을 감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편하게 앉아 귀한 곡물과 공산품을 먹고 쓸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거듭거듭 생각하게 되었다.

1880년대에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 생각도 났다. 구한말, 모든 것이 미개하여 외국인으로서는 살아가기 어려운 이 땅에 그들은 오직 복음 하나를 들고 온 것이다.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고 피와 땀을 흘렸을까. 그들은 결국 목숨까지 바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그들이 한 알의 밀알이 되었기에 나도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아닌가!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의 공로도 잊을 수 없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있을 때,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애국선열들이 옥에 갇혔으며 심한 고문 끝에 비참하게 생명을 잃었던가! 그들의 가족은 파탄에 이르고 민족의 가슴은 멍이 들대로 들었다. 1950년 6.25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우러 와준 UN군도 감사할 대상이다. 무방비 상태였던 남한은 철저히 준비하고 완전무장을 한 북한군의 남침으로 불과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말았다. 북한군은 기세를 몰아 낙동강 전선까지 물밀듯이 밀고 내려갔다. 그 때의 참담함과 비극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미군 전사자만 5만여 명이라고 하니 살아남은 불구자는 얼마나 많겠으며 그 가정들의 슬픔과 아픔은 얼마나 컸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 모든 것이 감사할 일이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깨닫게 되면서 나는 완전히 은혜의 빚더미에 파묻혀 있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자신을 보면서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큰 은혜를 받고 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내가 너무나 한심했다.

‘이 엄청난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삶은 과연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이 은혜의 빚더미에서 헤어날 수 있는가?’

나는 은혜를 갚는 삶이 무엇일지 며칠 동안 고민했다. 그러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선교사가 되어 어려운 나라에 의술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펼치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 무렵에 나는 무얼 해도 눈물이 나왔다. 기도를 해도, 찬송을 해도, 말씀을 봐도 눈물이 터졌다.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묵상할 때마다 눈물이 흘렀다. 나는 세상에 빚지고, 복음에 빚진 자였다. 그러므로 더 이상 그대로 살 수는 없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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