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의 생활신앙] 과거를 통해 현재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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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연 수명은 100년 내외다. 유사 이래 긴 역사로 볼 때는 한 경점에 불과하다. 우리가 이 땅에 살기 전 수천 년 동안 많은 선배 시민(조상)들이 살아왔고 우리 이후에도 수많은 후손들이 이 땅(지구)에서 살게 될 것이다. 과거를 향해 보아도 끝없이 멀고 미래를 향해 보아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길게 보면 하나의 선(線)으로 연결되어 과거-현재-미래로 진행되고 또 진행될 것이다. 마치 안개가 자욱한 시골길에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는 것 같다. 차 안에서 보면 안개에 가려 얼마간의 근과거와 얼마간의 근미래가 제한적으로 보일 뿐이다. 이것을 공간에 적용하면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어떤 사람들의 어떤 일들이 있었고 또 있게 될 것이다. 거기까지 확장하면 선(線)은 면(面)으로 확장되고 이런 일을 계속하면 입체(立体)적인 현장이 보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시간적으로 과거에, 공간적으로 어떤 곳(다른 세계)에서 살아왔던 인류(조상)의 경험담이나 있었던 사실(史實)들을 지금(now) 여기에(here) 소환하여 듣고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생각과 판단, 즉 실제의 삶이 훨씬 더 균형 있고 알차게 운영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인물을 배우는 의미(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런 관점에 기초를 두고 과거 역사의 몇 가지 사항을 공부해 보겠다. 개자추(介子推)이야기다. 진(晉)나라 태자 중 중이(重耳)가 여희(驪姬)의 난을 만나 초(楚)나라로 망명할 때 호언, 조쇠, 전힐, 위주, 개자추 등 다섯 사람이 그의 뒤를 따랐다. 진헌공이 죽고 잠깐 재탁자(齋卓子)가 임금이 되었으나 신하들이 복종하지 아니하여 이극(李剋)이 죽이니 태자 중이(重耳)가 그 말을 듣고 진나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게 되었을 때 개자추가 자신의 다리를 잘라 중이에게 먹게 했다. 그렇게 돌아와 중이가 임금이 되니 그가 바로 문공(文公)이다. 그런데 문공은 자기를 따라온 네 사람에게만 상을 주고 개자추만 빼버렸다. 이에 대해 개자추가 궁궐 기둥에 글을 써 붙였다. “용(龍)이 교교(矯矯)하거늘 잠깐 그 살 곳을 잃었다. 다섯 마리 뱀이 좇아서 천하를 주유할 때 용이 굶주리거늘 한 뱀이 다리를 잘라 먹였다. 용이 연못에 돌아와 편안하게 되니 네 마리 뱀이 구멍에 들어가 다 제 살 곳을 차지했는데 한 마리 뱀만 구멍이 없어 들판에서 울고 있다.” 문공(文公)이 이를 보고 기둥의 먹물을 깎아내라고 하였으나 먹물이 점점 더 스며 들어가 글자의 획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그제서야 뉘우치고 개자추를 찾았으나 그는 이미 복부산(伏釜山)으로 들어간 뒤였다. 산마루에서 부르면 산 아래에서 응하고, 산 아래에서 부르면 산마루에서 응하니 사람들로 하여금 골짜기마다 나무 아래에 불을 놓게 하였다. 개자추가 불을 피해 산에서 나오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나무를 끌어안고 불타 죽고 말았다. 이로부터 문공이 크게 후회하며 한식(寒食)을 삼아 3일 동안 전국에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였다. 이것이 4월의 한식(대략 식목일 때)에 대한 내력이다. 그건 그렇고 요즘 우리나라에 이 역사가 주는 함의를 생각 해보자. 4.10 총선에서 여당과 야당 모두 수고한 사람들이 있었다. 행사 후 논공행사를 할 때 혹시라도 섭섭하게 느끼는 사람이 없어야겠다. 공천과정에서 지금까지 당을 위해 나라를 위해 수고한 사람들을 많이 탈락시켰다. 선거를 치른 후 수고했던 사람들을 치하하기보다 책임을 물어 징계 혹은 내치려고 한다. 본인들은 사실을 알 것이고 먼 훗날 역사가 또 알 것이다. 바라기는 문공(文公)을 도와 희생하고 수고한 개자추를 버리듯 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특히 정치는 정(正)하여야 하기 때문이다(政而正也).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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