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있지 않습니까?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는데 실천적인 삶은 아직 부족합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란 입술이 아닌 몸으로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필자는 14년 전 서해안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로 환경운동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입술로만 자연환경 운동을 했지, 몸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환경 교육을 하고 자연환경 보호 실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모든 생명체들은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 아래 죽어 가는 생명체들이 인간을 향하여 원망하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봄이 되면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라”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뛰어다니는 나의 발밑에는 생명체들이 있습니다.
씨앗에서 이제 막 발아하여 올라오는 싹이 있고, 땅속에는 부화할 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몸이 부서지고, 또한 숨이 막혀 죽어가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채 생명이 피어 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자연이 통곡하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자연환경이 주는 혜택만 배부르고 등 따습게 누릴게 아니라, 거기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합니다.
둘째로, 자연환경은 공유자산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자연환경은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자산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후손들의 자산입니다.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물질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지구 환경이 병들어 사람이 살 수 없는데 아무리 많은 재산을 물려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자연환경의 파괴는 곧 나와 자손들의 삶을 파괴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자연환경을 훼손시키는 것을 보고 묵과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친한 관계라 할지라도 자연환경을 훼손시키는 사람을 보면 스톱을 시켜야 합니다.
셋째로, 노벨 환경상 제정을 위한 노력입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노벨 환경상 제정을 꿈꿔 왔습니다. 이를 위해 각계각층에 청원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인데 문학이 무슨 필요가 있으며, 화학과 물리, 의학과 평화, 경제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루빨리 노벨 환경상이 제정되기를 소망합니다.
한번 무너진 자연환경이 회복되기까지는 30년, 50년, 100년이 걸립니다. 어쩌면 살아생전에 내가 무너뜨린 자연환경이 회복되는 것을 못 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춤추고, 노래하는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세요.”
유성상 목사
<만리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