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어사전 풀이에 보면 ‘자유’의 뜻은 ‘남에게 얽매이거나 구속받거나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귀한 가치의 ‘자유’란 말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35번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소련 위성국가 자유쟁취 저항투쟁에서 한 소녀는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우리 나라도 일제 35년간 자유를 잃었다. 조국 광복과 함께 자유를 찾았다. 미국 하지 중장이 3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이때 나라에 쓸 인물이 필요했다. 영어도 한국말도 잘하는 우광복에게 한국인물 추천을 요청받았다. 미국 사시는 윌리엄 어머니께 자문을 구했다.
윌리엄 어머니는 남편이 충남 공주에 선교사로 나왔다가 장티푸스로 사망하고 두 딸마저 풍토병으로 잃은 가정적인 슬픔이 있는 여자였다. 아들 우광복은 일제로부터 한국광복을 염원하여 선교사 아버지가 한국식 이름 우광복으로 지은 것이다. 어머니께 자문 받은 우광복은 기독교계 인물 50명을 미군정 초대 한국인물로 하지 중장에게 추천했다. 그 중 안재홍 최현배 조병옥 등 48명이 기독교 교인이었다. 3년 미군정에서 대한민국 정권을 이어받고 제헌국회 초대의장이 된 이승만은 종로 출신 이윤영 목사 의원에게 제1회 개회기도를 하게 했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하략)”
이와 같이 이윤영 의원은 절절이 자유대한을 위해 기도했다.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 민주 평화의 나라 반석같이 세우는데 최선을 다하며 날마다 기도했다. 대한민국 건국초기에 나라 안에는 제주 4.3폭동, 여수순천반란사건, 지리산공비준동 등 많은 사건을 현명한 통치와 기도로 다 물리쳤다. 위기의 공산당 남침도 기도와 통치 신념과 반공반일의 국시를 내세워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체제를 굳혀 나갔다.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과 굳건히 맺은 한미방위동맹체결이 없었다면 조선민주의 인민 공화국 천지의 자유 없는 공산치하의 비극을 맞았을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당과 일본이 동시에 쳐들어 오면 먼저 공산당부터 막으라 했다. 반공반일 국시를 철저히 지켰다. 한강의 기적을 낳은 박정희 대통령도 5.16 군사정변 때 혁명공약 제1은 반공이 국시였다. 자금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사회주의 대결에서 공산사회는 몰락하고 자유세계가 행복을 누리고 있다. 1951년 1.4 후퇴시 대한의 자유 찾아 월남한 이산가족 천만의 향수는 아직도 자유 통일 없는 우리나라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대한의 자유 민주를 지키다 순국한 국군장병 십여만 장병들의 넋이 서울 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자유를 지켜준 이 장병들의 순국정신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곧 현충일이 다가오고 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한경직, 박윤선, 장경재, 김명혁 목사님을 비롯 많은 목사 장로 성도들이 월남했다. 지금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동상 앞에 숭배의 묵념이 없으면 삶의 자유가 없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님을 비롯 많은 외국 선교사들의 기도와 희생이 오늘 우리 신앙의 자유를 낳았다. 하나님 은혜로 무명의 선교사 아내 윌리엄 사모와 그 아들 우광복(1987년 사망) 모자가 하지 중장에게 기독교 인물 48명을 추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을 통하여 오늘의 자유대한 민주나라를 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깊이 감사해야겠다. 천만 기독교 한국성도들이여! 남북복음통일 자유민주통일도 날마다 기도하자.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