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음력 1월 1일 새해 첫날, 하얀 떡과 맑은 국물을 먹으며 지난해 있던 일들을 잊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습니다. 떡국은 ‘첨세병(添歲餠)’이라고 하는데 ‘나이를 더해주는 음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떡국은 길게 뽑은 가래떡으로 만들었는데 가래떡처럼 장수하라는 의미이고 가래떡을 동그란 모양으로 잘라 먹은 이유는 돈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엽전’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설날에 먹은 떡국은 장수와 부, 생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는 명절 뿐 아니라 모임에도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사를 가면 이웃들과 팥죽을 나누곤 했는데 팥죽을 나누어 먹는 것은 팥죽에 귀신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항상 이웃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살아가는 민족이었습니다.
성서에도 떡과 음식에 관계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절기 때마다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유월절에는 무교병을 먹었는데 이것은 이웃과의 공동식사가 되었습니다. 화목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목제물은 수소와 암소를 드렸는데 제사 후 남은 고기는 그 날에 먹어야 하며 이튿날까지 남겨두지 말라하셨습니다. 고기의 양이 많았을 텐데 왜 남기지 말라 하셨을까요? 이날 모두가 함께 배부르게 먹으라는 것입니다. 한자리에 모여 같이 음식을 나누다 보면 불편한 관계였을지라도 서로간의 긴장도 완화되고, 말을 섞다 보면 오해도 풀릴 겁니다. 이는 공동 식사가 갖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이스라엘은 함께 나누어 먹으며 서로를 섬겼습니다.
민수기 8장에 성막 안에 있는 등잔과 떡상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창문이 없는 어두운 성막 안에서 등을 켤 때에, 등을 켠다는 히브리어 ‘알라’는 ‘불을 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낮은 곳에서부터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하나님을 향하여 비추어 올라가듯 비춘다는 것입니다. 등잔에 불이 켜지면 맞은편 떡상을 비추게 됩니다. 떡상 위에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떡이 6개씩 두 줄로 놓여있는데 이 떡을 ‘진설병’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길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떡상을 비추는 등잔을 통해 알려주시고자 한 것은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지 한 달 반이 되어 가져온 양식은 떨어졌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주십니다. 인간의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하라고 떡상에 빛을 비추셨습니다. 제사장 아론은 아침과 저녁으로 등을 켜고 백성들에게 이것을 늘 깨달아 알게 합니다. 비춘다는 것은, 이웃과 떡을 나누며 생명을 지키고 서로를 섬기라는 디아코니아의 정신을 의미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온전한 섬김의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