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이치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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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렇게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 발목을 다치지 않을까?”

덕수는 이마를 찌푸리며 걱정스럽게 말을 했다.

“아무 탈이 없길래 뛰어 내리겠지요. 저렇게 높아도.”

옥희는 으레 그러려니 하는 말투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적어도 30미터는 훨씬 넘을 텐데 말이지….”

덕수와 옥희는 TV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면서 중얼대듯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니까 혜종이란 놈이 바로 저걸 하겠다고 했었군. 번지점프니 뭐니 하던 것 말이야.” “예? 혜종이가요?”

혜종이라면 미국에 가있는 손녀를 말하는 것이다. 아들 딸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라 혜종이라면 덕수와 옥희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위하고 귀여워하는 장손녀인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저렇게 높은데서 뛰어내린다니 이건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무지막지한 사람잡을 노릇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옥희는 다급하게 말을 했다.

“이러구 있으면 안돼요. 빨리 미국에다 전화를 걸어서 하지 말라고 일러야 해요. 빨리요.”

이 말에 덕수는 피식하고 웃었다.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면서?” “아휴! 혜정이가 어떻게 저걸 해요?” “그게 무슨 말이요. 혜종이는 안된다니?” “혜종이는 우리 집안의 장손녀인데….” 

덕수는 큰소리로 웃었다.

“아니 다른 집 아이는 몰라도 우리집 손주들은 안된다는 거요?”

“글쎄 다른 말 마시고 빨리 전화를 하시라니까요 미국에다.”

“지금? 지금이 몇 시인데 미국이?”

덕수는 벽시계를 올려다 보면서 시차를 머리 속으로 따져 보았다.

“지금 곤하게 자는 시간이야. 급할 것 없어 혜종이 말이 8월 20일께라고 했으니까 아직 멀었어.” “원래 눈이 크면 겁이 많다는데 그 애는 눈이 큰데도 겁이 없어요.” “겁이 없다…”

덕수는 말끝을 흐리면서 생각을 했다. 예부터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했다. 아는 게 탈이라는 뜻이니 모르면 오히려 만사가 태평이란 말이 아닌가.

“아마 혜종이는 번지점프가 저렇게 높은데서 내리 뛰는 것인지를 모르는 게 아니야?”

“아무렴 모르면서 하겠다고 조르겠어요? 자기 어미에게? 중학교 2학년이면 어린애가 아니에요. 저번에 미국에 갔을 때 쌩뚱같이 할머니는 지구가 어떻게 해서 돌게 됐는지를 아느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당신 뭐라고 대답을 했소?” 

덕수는 웃었다.

“당신은 아세요? 지구가 어떻게 해서 돌게 됐는지를요?” “내가?”

덕수는 더 참을 수가 없어 큰소리로 웃어댔다. 덩달아 옥희도 웃었다.

“나도 모르지. 모르니까 모두가 겁 없이 살고 있다는 거야. 어린애들을 보라구 아무것도 모르니까 쏜살같이 차가 달리는 도로에도 마구 뛰쳐나가는 게 아니요?” “그럼 혜종이도 몰라서 그런다는 거에요?” “그렇지! 그러나 그게 아니면 안전하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겠지.”

 아무리 내용이나 이치를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믿을 수가 없다면 겁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혜종이는 믿고 있는 것이다. 발목을 묶은 로프가 전혀 걱정할 게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의 하나라도 의심이 된다면 결코 몸을 내맡길 수가 없을 것이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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