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노무현 전 대통령 – 유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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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제 가족과 측근들에 대한 의혹으로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몰랐다고, 모함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냐고 따져 묻지도 않겠습니다. ‘노무현’답게 하겠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누구든 벌을 받아야하며 전직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될 순 없습니다.

다만 이제 제가 할 선택으로 상처받을 이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어떤 꾸중과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 서운하고 노여운 마음, 부디 저의 마지막 진심을 담은 이 편지로 조금이라도 달래지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저의 인생을 ‘싸움’이라는 한마디로 정의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정말로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정치인이 되기 전 인간 노무현의 삶도 그랬습니다. 그 최초의 상대는 가난이라는 녀석이었던 같습니다. 세무전문 변호사로 돈을 좀 만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뻤던 건 제 아이들이 어린 날의 저처럼 먹을 걸 숨겨두고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양보해라, 나눠 먹어라, 힘주어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안 사람은 그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종종 추억하곤 합니다.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그 나이가 되도록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눈앞에서 나와 내 가족의 목을 죄는 가난과 싸우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그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풍요와 여유에 취해갔지만 눈에는 자꾸 그런 것들이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곧 세상엔 많은 ‘노무현’들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죽어라 이 악물고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먹을 걸 숨길 수밖에 없는건 예전의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왜 그럴까, 왜 나라는 성장하는데 가난한 이들은 왜 학교에조차 갈 수 없는 가난을 자식에게까지 대물림하게 되는가, 점차 사회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왜곡된 역사가 도처에 널린 반칙과 특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뒤늦은 깨달음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들을 외면하고 저 혼자 소시민적 행복을 느끼며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 후 저의 삶은 아시는 대로입니다. 인권변호사가 되었고, 국회의원이 되었고, 청문회에 나가 이름도 얻었고, 그리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늘 예전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대통령 당선을 통보받고도 다리가 떨려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할 만큼 두려웠습니다. 언제까지 대결과 분열을 가르칠 것입니까. 언제까지 증오와 반복을 가르칠 것입니까. 언제까지 특권과 반칙을 가르칠 것입니까. 사실은 모두가 불안하고 또 불행하지 않습니까? 대통령되는 것보다 원칙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02년 저와 여러분이 함께 꾸었던 꿈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키는 건 이 길 뿐입니다.

너무 슬퍼하거나 미안해하지 않기 바랍니다.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의 운명입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이었음 보다 이 아름다운 나라의 국민이었음이 더 큰 영광이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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