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헌신과 순교로 세워진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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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로 선택된 교회이다. 한국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는 1866년 대동강변에서의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로 시작된다. 토마스 선교사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 토마스 선교사는 자신의 목을 칼로 베는 관군에 대한 분노와 정죄의 목소리 대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이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일로 조선 땅에 뿌린 복음이 열매 맺게 하여 주옵소서.” 

이와 같은 용서와 사랑 때문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토마스 선교사를 참수한 박춘권은 후일에 교회의 지도자 영수가 되었다.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하면서 전해진 성경 때문에 복음의 열매가 나타나고 마침내 조선교회가 탄생되었다. 이처럼 한국교회의 역사는 순교로 시작되었다.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로 시작된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존 로스 목사, 매킨타이어 목사와 의주청년 백홍준, 서상륜, 서경조, 이성하, 김진기, 김청송 등을 통한 1882년 우리말 성경 발간과 반포로 이어졌다. 

1884년 알렌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이 땅에 발을 밟기도 전, 이미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하심으로 한국교회는 세계교회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선교사 입국 이전에 우리말 성경 보급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성경 반포가 나라의 전통과 예법을 문란케 한다는 이유로 백홍준 장로는 체포되어 의주 감옥에서 순교의 길을 가게 된다. 이후 국가의 비운의 역사와 함께 한국교회의 순교의 역사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주기철 목사로 상징되는 일제 강점기의 신사참배 반대는 일제에 대한 민족 양심의 고귀한 마지막 저항이기도 하였지만 우상숭배를 할 수 없다는 여호와 하나님 신앙에 대한 몸 바친 충성,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한국교회사에서 세 번째 커다란 시련기에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순교자가 나온 것은 바로 70년 전 6.25전쟁을 전후한 무신론자 공산주의의 박해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 수많은 순교자 중에 소양 주기철 목사의 일사각오의 신앙, 순교의 신앙 영향으로 사랑의 원자탄이 된 손양원 목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손양원 목사는 1944년 주기철 목사의 순교 소식을 듣고 “주님, 이 부족한 종도 신앙의 진리를 굳게 지켜 주기철 목사님의 뒤를 따라 순교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주기철 목사의 신앙이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순교자기념주일은 제79회 총회에서 제정되고 전국교회가 함께 지켜 오고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가 주목할 수 있도록 성장한 것은 순교자들의 헌신과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복음의 역사가 시작이 되었듯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그 복음의 전도자로 사용하기 위하여 부르신 것이며, 이를 위해 철저히 준비케 해주셨다는 고백 위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올 때, 이미 조선 사람들에 의하여 성경이 번역되었고, 선교가 공식화되기도 전에 중국에서 세례를 받고 조선으로 들어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질 옥토를 만들어 놓으셨다. 또한 그 씨앗이 옥토에서 ‘순교’라는 고난의 양분을 먹어 곧게 성장할 수 있도록 역사를 이끌어 가셨다.  

복음적 저항의 길은 단순히 개인적 신앙에만 머물지 않는다. 내 신앙의 가치가 변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고 고수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기쁨이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순교, 복음적 저항의 미학은 복음의 본질과 가치를 회복해야 할 과제를 가지고 있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찾아야 하고 추구해야 할 역사적인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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