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자존심(自尊心)」과 「자존감(自尊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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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식자(識者)들이 자주 사용하는 두 단어 ‘자존심(自尊心)’과 ‘자존감(自尊感)’은 헷갈리기 쉬운 단어이다. 먼저 국어사전의 뜻을 살펴보자.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스스로 품위를 지키면서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 두 단어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자존심」이 “남과 비교해서 우위(優位)를 차지하려는 마음”이라면 「자존감」은 “특정한 비교대상 없이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라 했으니 더 쉽게 말하면 「자존심」은 “나는 잘났다” 하면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나는 소중하다” 하면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보듯이 두 단어는 각각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뜻하는데 ‘전자[자존심]’가 비교대상이 있는데 반하여 ‘후자[자존감]’는 비교대상이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 「자존심」이 ‘상대적(相對的) 개념’이라면 「자존감」은 ‘절대적(絶對的) 개념’이라 하겠다.   

이 두 단어로 된 몇 가지 예문을 제시해 본다. 먼저 ‘자존심’과 관련하여: ①그는 근근이 끼니를 이어가는 처지이면서 자신이 양반 출신이라는 ‘자존심’이 대단하다. ②그는 한국 프로야구의 ‘자존심’이다. ③아무리 바닥까지 추락했어도 일류대학 출신이라는 ‘자존심’은 남아 있었다. ④그 문제는 둘 사이의 ‘자존심’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번에는 ‘자존감’의 예문이다. ①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자녀는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 ②우리 학교에서는 음악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③그는 자신 스스로를 ‘뚱땡이’이라고 여기는 탓에 ‘자존감’이 부족하다. ④그 회사는 노동자들이 ‘자존감’을 갖도록 응원하고 있다. 

「자존심」 및 「자존감」과 관련하여 그 차이를 극명(克明)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전(全) 일본열도를 아연실색(啞然失色)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일본 최고의 명문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한 사람의 천재 학생이 취업하기 위해 《마쓰시다 전기회사》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수석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고 항상 남보다 우수한 ‘천재 학생’이었기에 이번에도 탁월한 성적으로 합격하리라 기대를 모았다.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 천만 뜻밖에도 합격자 명단에 그 천재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던 천재는 분명히 수석으로 합격이 될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 수석은커녕 합격자 명단에도 들지 못한 것이다. 당당한 모습으로 발표를 기대했던 그는 풀이 죽은 채, 핏기 없는 얼굴로 힘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에 돌아온 그는 그날 저녁, 평생 처음 맛본 불합격에 따른 좌절감과 상처 난 자존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이 들었다가 영원한 잠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가족들은 이미 숨을 거둔 그를 발견하고 큰 슬픔에 빠져 오열(嗚咽)하고 있을 때, 긴급전보로 ‘합격통지서’가 도착하였다. 그는 예상했던 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한 실력으로 합격을 했던 것인데 ‘수석’으로 합격하였기 때문에 일반 합격자 명단에 넣지 않고 별도로 적혀 있던 그의 이름이 실무자의 실수로 합격자 명단에서 누락된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사건이 잠잠해질 무렵, 한 기자가 그 회사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을 찾아가 인터뷰하며 그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회장은 당시 회사의 실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하면서 말하기를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마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회장의 뜻밖의 말에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회장은 말을 이었다. “단 한 번의 실패를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심약(心弱)한 사람이라면 다음에 회사의 중역(重役)이 되었을 때, 만약 회사가 위기에 봉착한다면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함으로써 회사를 엄청난 위기에 빠뜨리고 전 사원의 삶이 걸려있는 회사를 비극으로 끝맺는 우(愚)를 범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 “그 천재 청년은 ‘자존심(自尊心)’ 때문에 ‘자존감(自尊感)’을 포기했던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으로 그치지만 ‘자존감’을 잃으면 목숨을 잃는 결과가 된다.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堡壘)는 ‘자존심’이 아니요, ‘자존감’이라 하겠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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