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한 삶과 믿음 이야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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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상당한 학벌을 지닌 분이 쓴 책을 읽었다. 그 글 중에 “개인주의를 버리고 공동체의 소중함을 인식해야 한다”라고 썼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기에 혹시 내가 ‘개인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에 그렇지 아니할까, 여겨져 국어사전을 펴봤다. 분명히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기 위해 권리와 의무를 존중하는 사고방식’이라고 그 의미를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사전에서는 ‘의무’란 단어가 빠지고 ‘개인의 우월성 존엄성 자유성을 강조하는 사상’ 뒤이어 ‘공동선(善)을 저해하는 개인주의도 있음’이라고 규정함도 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의무가 따르지 않는 권리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이론이 통론이다.  

그 후 전철 안에서 또다시 ‘개인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대화를 들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개인주의 때문에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할 줄 모른다”고 했다. 이 두 분 모두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동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개인주의는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자애심(自愛心)에서 발로된 사상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를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아니하고 자유로이 펴나가는데 있다. 이를 누리고자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철저히 지키는 데서 비롯된다. 그 예의 하나로 서구시민사회에서는 근무시간에 자기에게 맡겨진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온 힘을 다 쏟는다. 반면 퇴근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근무를 종료한다. 어찌 보면 야박하다. 그러나 근무시간을 철저히 지켰기에 퇴근 시간을 지킴이 합당하다는 논리다. 

‘서구시민사회’가 크게 발전한 것도 개인주의 때문이며, 미국 역시 그런 의식으로 민주주의가 성장 발전했기에 세계에서 가장 으뜸된 나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는 왜 오늘날까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동하는 자가 많은가. 그 원인 중 가장 큰 하나는 우리역사가 외세로부터 오래도록 많은 시달림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주로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강압을 받아왔고 또 36년간 일제강점기에서는 무수한 고난 속에 한숨과 눈물로 살아왔다. 이러한 외세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오직 ‘개인’보다는 ‘우리’라는 단합된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만큼 우리민족은 「우리」의 힘을 기르는데 총력을 기우려 왔다. 그런 까닭에 ‘개인의미’를 ‘자기만’이라는 이기적 심리’로 잘못 비춰진 것이다. 이런 의식이 우리에게 보편화 되었기에 ‘개인주의는 바로 이기주의 산물이라는 오해나 착각으로 이루진 결과가 아닐까. 그러기에 애매성을 지닌 기록물도 있다고 본다. 진정한 개인주의 의식을 성경은 명확히 밝혀 우리에게 잘 이해시켜주고 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 (살후 3:10)

‘누구든지 먹고자 하는 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일을 싫어하면서도 먹기를 좋아하는 것은 이기주의요, 폐쇄적 개인주의이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여 이를 혼용하거나 잘못 적용 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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