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역사의식과 안보의 중요성 고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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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발발 74주년을 맞이하여

금년 6월 25일이면 6.25 전쟁발발 74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1950년 6월 25일 주일새벽 4시경 북한군 19만 8천780명의 정예화된 병력이 전차와 곡사포, 박격포와 전투기로 무장하고 대한민국을 남침하였다. 당시 한국군인들은 전차나 전투기도 없이 육‧해‧공군 합쳐서 약 5천752명이 치안 유지를 위한 보잘 것 없는 병력을 가진 상태였다. 북한 괴뢰들의 남침 3일만에 국군 전방 사단중 6사단을 제외하고 제 2‧5‧7사단은 해체 되었고 삽시간에 수도 서울은 물론 울산과 부산 지역을 제외하고 전 국토가 불과 1개월도 안되어 북한 남침으로 초토화되었으며, 점령당하지 않은 울산과 부산지역은 피란민들로 물결을 이룬 비참한 실정이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가운데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투르만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울부짖으며 간구하는 주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투르만 대통령으로 하여금 UN을 통하여 UN군을 한국에 급파시키도록 ‘UN 긴급안보 이사회’를 소집하여 UN군 파견을 결의하게 되었고, 미국을 위시한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델란드, 콜럼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에티오피아, 벨기에, 프랑스, 남아프리카, 룩셈부르크 등 16개국의 군인들이 우리나라를 수호하기 위하여 긴급 파견되었다. 

6.25 전쟁으로 인하여 144만여 명의 전쟁 희생자가 생겼으며, 4만여 명의 전쟁고아와 29만 명의 전쟁미망인, 납치자가 8만5천 명이었고, 양민 학살로 죽은 민간인이 13만 명이나 발생하게 되었다. 이같은 인명피해 뿐만 아니라 경북의 칠곡, 군위, 영천, 포항 지역과 경남의 울산 및 부산 지역을 제외한 전 국토가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었으며, 경제적으로는 세계에서 최빈민국으로 전락되었다.

6.25 전쟁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괄목할 만한 사항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다. 1950년 9월 15일 새벽 맥아더 장군의 지휘하에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었다. 초반에는 낙동강 방어선 근방에 진지를 만들어 놓은 북한군이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인천상륙작전 소식이 전달된 이후 북한군은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선이 붕괴된 것을 파악한 북한 측에서는 상륙작전으로 인해 거의 모든 보급선이 단절되었음으로 인민군에 전원 후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9월 28일 서울이 탈환되었으며, 30일에는 낙동강에서부터 북진하던 국군과 상륙군이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1950년 10월 1일 국군은 38도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였고, 그 후에 이것이 국군의 날의 기원이 되었다. 

UN군이 38선을 넘어 1950년 10월 19일엔 평양까지 함락시키고 계속 북진해가자 북한 김일성은 당시 스탈린에게 지상군 파병을 요청했으나 미국과의 대립을 꺼려서 거절하게 되었다. 다급해진 김일성은 중국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중공군은 한반도에 대대적으로 출병하여 평양까지 진격한 UN군의 후미와 측면에 있는 보급로를 차단하였다. 이같이 중공군의 본격적인 개입으로 전선이 다시 후퇴하기 시작하자 맥아더 사령관은 중국에 대한 핵폭격을 실행하자고 주장했으나 핵폭격을 반대하는 영국의 강력한 권고에 트루먼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지금같이 38선이 그어진체 휴전 협정이 체결하게 되었다.  

6.25 전쟁을 개관해보면 전쟁초기에는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밀어 붙였으나 중공군 개입 후 인해전술로 중요 전투는 피아능선과 담장의 전투를 제외하고 모두 중공군과의 전투였다. 이제 호국의 달인 6월 25일이 다가오고 있다.

해마다 6.25 때가 되면 필자는 한국이 낳은 시인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의 글을 회상하게 된다.     

“산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엔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6.25 동란으로 인해 잿더미가 된 세계 최빈국 국가가 73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전국민의 피와 땀으로 맺은 결실로 말미암아 세계 제 10대 경제 강국으로 부상되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각 분야에서 한국인들이 세계적인 유능 인재로 활약하고 있으며, 얼마전 대한민국이 UN 비상임이사국으로까지 선출되었음은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공로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켜 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리는 바이다.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면서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과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안보가 튼튼해야 한다. 튼튼한 국방력 강화만이 북한의 끊임없는 핵위협과 도발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윤석열 정부는 국방예산을 획기적으로 증가하고 군의 사기진작을 위하여 힘써야 하겠다. 

지금 80세 이상의 노령층의 시니어(senior)들은 일제침략으로 식민지의 비참한 생활도 겪었으며, 부존자원이 전혀 없는 나라에서 세계 제10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그들의 피나는 노력과 땀의 결실이라 볼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은 결코 우연히 된 것이 아님을 우리 후손들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80-90대 senior들이 사라지기 전 우리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시키는 일이야 말로 가장 값진 교육이라 볼 수 있다. 

6.25전란 74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우리 후손들이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6.25 동란의 올바른 역사 의식과 안보의 중요성을 고취시키는데 세심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김명한 장로

<대구신광교회 원로,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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