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율법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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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아(바벨론 제국의 백성) 우르(Ur, 고대 국가 수메르의 수도)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믿는 자의 조상으로 택하시고 부르셨다. 아브라함이 죽은 지 400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내산에 친히 강림하시어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다.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제사 제도를 주셨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사장 사명을 감당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늘의 지식을 아직 감당할 수 없었기에 초등 교사인 율법의 지도 감독을 받게 한 것이다. 

 율법은 완전한 의(義)이다. 온전히 지키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아무도 율법을 지킬 수가 없다.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구원의 영광스러운 선물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함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義)를 밝히고 우리를 정죄(定罪)한다. 아무리 깨끗한 선인(善人)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율법이라는 저울에 달아보면 교만과 위선, 허물과 죄악을 깨닫게 된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은 마치 거울과 같다. 나를 비추어 보면 나의 죄악과 저주를 보여 준다. 율법은 내가 얼마나 가증스러운 죄인임을 알게 함으로 나를 작게 만들어 구원의 방패가 되시는 그리스도께로 피하여 그의 은혜를 구하게 만든다. 율법은 또한 죄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로 하여금 악행을 억제하게 한다. 중생(重生)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하나님께 대하여 두려움과 불안감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율법을 폐(廢)할 수 있느냐? 결코 폐할 수 없다. 폐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생활을 지도하고 규제하는 영원불변한 원칙이다. 평생동안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옳다. 다만 율법으로는 우리를 정죄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율법은 폐지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죽으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 율법의 시대는 가고 복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저주의 시대는 가고 은혜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율법을 통해서는 전체 인류가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 아래 있다. 여기서 해방되려면 율법의 결박과 족쇄에서 풀려야 한다. 율법은 어떤 인간도 지키는 데 불가능하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에 주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도와주시는 이유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완전히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들과 화해(和解)하신다. 우리의 행위의 가치를 따지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으로 우리를 영광의 자리까지 끌어 올려 주신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만한 어떠한 선함도, 의도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믿는 자들의 본성 위에 행하시는 강력한 치유의 역사가 없다면 우리가 빠지는 탐욕과 연약함, 무지라는 모든 죄들의 치명적인 영향 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잘 타오르는 불이라 할지라도 연기는 나는 법이다. 큰 믿음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의심할 수 있다. 

 “주의 장막에 거하는 자는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한 자이다.” 하나님의 눈에는 별들도 깨끗지 못하고 천사들도 의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믿음의 의(義)가 아니면 우리는 도무지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은혜는 값없이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값을 모두 대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얼마나 큰 은혜이며 자비하심인가! 율법은 한숨을 주고 복음은 기쁨을 준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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