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척이나 부럽고 기다려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 살이라도 더 먹고 싶고 혹시 어른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을 나이보다 어리게 보면 매우 서운해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 나이만큼의 대우를 받고 싶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어른들이 한 살이라도 적게 보이면 기분 좋아하는 것과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과히 틀리지 않는 일이다.
어른, 과연 어떤 것이 어른의 참모습일까? 그 정체를 알기나 하고 아이들이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걸까? 거기 생각이 미치면 우리들의 교육이 한참 허술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저 막연히 제 일을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때, 나이 그 기준을 정하고 사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법정 성년과 미성년의 지정이다. 언제부터인가 성년식이라는 것들을 하고 사회적으로 어른임을 인정해 주는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그 책임감을 알게 하고 축하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그 성년식이 과연 중요할까? 물론 형식이 의식을 끌고 가는 효과를 노린 것임을 잘 안다.
우리 전통에도 관례라는 것이 있었으니 그 전통을 되찾아 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정체성 논란도 잠재울 수 있다. 문제는 내면이다. 어른이 얼마나 책임이 크고 살아내기 힘든 것인가를 먼저 알고 덤벼도 감당하기 힘든 일인데 우선 어른이 된다는 흐뭇함만 즐기려 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밖에 없을 테니 걱정이다. 매사에 권리가 있으면 의무가 있다. 어른은 자신의 모든 일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의무를 위반했을 때는 모든 책임을 모두 져야 한다. 웬만한 잘못을 했을 때 아이라는 면죄부가 통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사실을 대부분 간과하고 지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책임감 외에 사회에 무엇인가 유익을 끼쳐야 하는 무한대의 책임을 갖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가장 무서운 조건인지도 모른다. 우리 신앙인들도 그냥 교회만 오가면서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고 평생을 믿었으면 이제 서둘러 어른의 반열에 올라가야 한다. 그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우선 내가 걱정이다. 이제 어른이 돼야 주님을 만날 때 얼굴을 들 수 있을 텐데 아직도 유치원생 수준도 못 되니 이 일을 어이할꼬. 우선 매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해 보자. 눈의 가시에게부터.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