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회의 시대적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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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1950년 남북 동족 간에  전쟁이 발생한 지 어언 74년이 되었다. 2차 대전 후 분단 국가는 독일, 베트남, 한국이었다. 독일과 베트남은 통일을 이루었고 한국만이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아 있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통일이 될 수 있을까? 기약도 없고 전망도 밝아 보이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면서 젊은 세대에게는 통일을 향한 염원과 의지가 약화되고 있다. 차라리 이대로 잘 살자는 여론이 더 높게 나온  통계를 봤다.  어느 한 쪽이 통일을 위해서 체제를 양보할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 특히 미‧일‧중‧러 주변 배후 세력이 만만치 많다. 한 가지 전제는 전쟁만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평화 통일이어야 하고 자유, 민주 시장경제 체제로의 통일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구할 수 밖에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그 동안 남‧북 간에 60여 년에 걸친 노력으로 맺어진 남북 협약을 모두 파기해 버렸다.  격렬한 비난전도 있었다. 북에서 오물 풍선을 남으로 띄워 보냈다. 남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겠다고 응수한다. 국민 대부분의 정치적 이념과 정서는 정치, 안보 면에서는 철저한 반공, 친미주의와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한 안보관을 가지고 있다. 북한 동포들은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적 자유를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 아사자(餓死者)가 수십, 수백만 명이 나왔다는 보도를 대한다. 불구하고 핵무기, 미사일 개발에는 혈안이다.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는 누가 나누는 것인가? 언론과 정치꾼들이 나눈다. 그리고 이념 갈등으로 인한 정치적 이득을 챙긴다. 어느 사회, 국가에도 다른 이견(異見)은 있기 마련이다. 정책 별로, 사안 별로 옳고 그름, 국익과 국민 개인에 이익이 되는 지의 여부를 분별하여 국민은 찬, 반 의사 표시를 하면 되는 일이다. 이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도 지도자들이 보수와 진보의 분열 양상이 있는 것이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교회는 사회가 병들었으면 그 병을 치유하는 사명과 역할을 감당해야 마땅할 터인데 교회도 똑같이 정치적인 이념으로 분열되어 갈등을 일으키고 싸운다. 서로 미워하고 분열된 우리 사회를 향해 화해와 화목케 하는 역할은 하지 않고 세상과 함께 이념과 갈등에 매몰되면 어쩌자는 것인가? 교회가 정치 권력과 가까워지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교회를 부패하게 할 소지가 있어 위험하다. 정교(政敎)는 언제나 분리되어 있어야 건강하다.

용서와 화해는 교회가 추구해야 할 성경적 지고(至高)의 가치이다. 교회는 화해를 위한 시대적 증인이 되어야 한다.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데 교회가 선도하여야 옳다. 우리가 미래를 향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우리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과연 무엇일까? 민족의 장래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옳다. 독일과 폴란드의 공산당과의 화해, 동독과 서독의 치유에는 교회가 먼저 대화하면서 물꼬를 텄다. 교회가 먼저 화해를 주도했다.  거짓말하지 않는 신실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도 교회가 선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탈북민들의 어려움을 교회가 모른 척 하지 말고 다가가서 품어 주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치권에는 무속인의 영향력이 있다는 소문을 많이 듣는다. 교회는 정치가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조언할 수 있어야 한다. 본회퍼 목사는 국가 정책이 반국민적이면 저지해야 하며 교회는 정치적 박해로 피해를 입은 소외 계층, 빈곤층, 병든 자들을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땅히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시대적  소명이다.

2대 대통령 존 아담스는 “정직하고 겸손하며 현명한 사람만이 머무는 이 집 백악관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우리도 좀 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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